걷기

2009년 10월 2일 서울성벽 순례길 1구간 걷기(숭례문~장충체육관)

한 용 석 2009. 10. 5. 10:02

서울성벽 1구간 : 약6km / 소요시간 4시간


코스 : 숭례문(남대문) - 백범광장 - 안중근의사 기념관 - 남산봉수대 - N서울타워 - 국립극장 - 장충체육관


도보시간 : 10시40분 시작 ~ 14시45분 종료 총 4시간 05분소요(벌에 쏘여서 치료받은 시간 40분 포함)


지도 


 

이동기록

10:40  남대문 YTN 건물앞

10:43  숭례문 복원현장 견학

11:00  이동(남산N타워 방향)

           다리건너 오뚜기슈퍼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오르막길로 올라 횡단보도 건너서 남산 계단길로 오름

11:20  백범광장

11:28  횡단보도를 건너 서울시과학교육원 옆 계단길로 오름

11:31  안중근 기념관

11:33  남산분수대

11:55  남산봉수대

11:57  남산N타워, 팔각정(국사당 터)

12:10  순환버스정류장

12:20  이정표(순환버스 정류장에서 3분거리) / 아스팔트길을 따라 진행합니다.(이정표 상관없음)

          ←N서울타워 1.4km, 화장실 250m, ↘남산골 한옥마을 1.2km

12:30  전망대 / 이정표 ←국립극장 1.5km, →N서울타워 1km, 안중근의사 기념관 2km

12:33  남산고유 소나무림 탐방로

12:39  약수터(적합) - 약수터에서 오름길로 올라 아스팔트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길거너편에 이정표와 오름길이 보입니다.

12:50  이정표(남산산악회 오름길)

          ←N서울타워 1.7km, →국립극장 600m, ↑상춘약수터 93m, 남산산악회 200m

12:52  상춘약수터(식수부적합)

12:57  남산산악회(약수터 식수적합)

13:12  이정표 ↗성곽탐방로, 남산산악회 300m, ←N서울타워 2km, →국립극장 300m

13:17  국립극장

13:20  자유센터

13:30  학생반공의탑

13:40  팔각정(휴식)

14:25  이동

14:34  암문

14:45  장충체육관 고개 버스정류장 횡단보도 앞 (2구간끝나는 지점)

 

사진 

  

 

숭례문 복원현장

 

 

숭례문(崇禮文)

국보 제1호인 숭례문은 서울도성의 정문으로 속칭 ‘남대문’ 이라고 불립니다. 600년의 역사를 지닌 숭례문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며 국가 차원의 의장행렬이 통과하던 성문으로 8문가운데 가장 웅장하고 규모가 큽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시대, 6.25같은 큰 난리를 여려 번 겪으면서도 그 모습을 굳건히 지켜오던 숭례문은 2008년 화재사고로

목재로 된 문루가 불타버렸습니다. 현재 복원이 진행중이며, 2012년 복원 완공 예정이라고 합니다.

 

숭례문 현판

양녕대군이 썼다고 하는데 다른 문과는 달리 세로로 달았습니다. 이것은 한강 건너 관악산이 오행의 화(火)산에 해당되어

그 화기가 도성을 위협하게 되므로 숭례문 현판을 세로로 달아 맞불로 도성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100여년전의 숭례문의 모습 

 

 

 

 

 

 

 

횡단보도를 건너서 우측 오름길로 올라 횡단보도를 건너 계단길로 오릅니다.

 

힐튼호텔

 

이곳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우측 계단길로 오릅니다.

 

백범 김구선생 동상

김구선생은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부친 김순영과 모친 곽낙원 사이에 외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동학에 입도하여 1894년 9월 탐관오리의 척결과 척양척왜(斥洋斥倭)를 외치며 동학군의 선봉장으로서 해주성을 공략

하였으며 1896년 3월에는 변복(變服)한 일본인 중위를 살해하여 사형을 언도 받았으나 광무황제(光武皇帝)의 특명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후 1907년에는 독림지사들의 비밀결사인 신민회(新民會)에 가입하여 맹렬한 구국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1만세 시위로 일제의 감시와 탄압이 더욱 심해지자 윤봉길 등의 의거를 지휘하였으며 임시정부의 주석을 역임한 후

광복 이후에는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환국하여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결의된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운동을 적극 추진하였다.

1948년 4월19일 남북협상차 평양에 다녀오는 등 민족통일을 염원하던 선생은 1949년 6월 26일 경교장(京橋莊)에서 통일을

반대하는 세력의 사주를 받은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서거하였다.

선생의 유해는 온 국민의 애도 속에 7월 5일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되었으며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현역 육군 소위였던 암살범 안두희는 사건 발생 48만에 2계급 특진하였다. 안두희는 한국전쟁발발 이틀 뒤에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가 7월10일 육군 소위로 복직되었고 약1년 뒤에는 소령으로 진급하여 중령으로 예편했다.(대한민국 史 1권 중에서)

 

성재 이시영선생 동상(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선생은 조선조 신진개화 곤료로서 구한국 외교부 교섭국장, 한성재판소 소장, 평안남도 관찰사(평안감사)등을 거쳐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역임한 분이다.

일찍이 관직생활을 시작하였으며 1910년 일제에 의하여 국권이 피탈당하자 형제 가족 40여명과 중국으로 망명하여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을 진흥하고 수많은 독립군을 양성하여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1919년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신흥무관학교의 건학이념을 계승하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1947년 성재학원 신흥대학(현 경희대)을 설립하였다.

1948년 7월 제헌국회에서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이승만 독재 정권에 항의하며 1951년 5월 「국민에게 고함」

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부통령직을 사임하였으며 시위소찬(尸位素餐)이라는 명구를 남기기도 하였다.

1953년 4월17일 피난처인 부산 동래에서 서거하여 현재 수유동 유택에 안장되어 있다.

 

서울시 과학교육원  / 길건너 계단길로 오릅니다.

 

안중근의사 동상

1879년 황해도 신천에서 출생한 안중근의사는 어려서부터 한학을 수학하고 무예를 연마한 문무를 겸비한 인물이었으며 개화

지식인으로서 근대적 사고와 박애주의를 가진 민족 지성이었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중국 상해로 건너가 구국운동과 국권회복운동을 모색하였고 귀국 후에는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설립하여

교육 계몽 운동을 전개하고 삼합이라는 광산회사를 세워 산업 진흥운동에도 힘썼다.

1907년 연해주로 망명하여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국내 진공작전을 수행하는 큰 전과를 올린 의사는 자신의 활동지역에 국권 강탈의

원흉이자 동양 평화의 파괴자인 이토 히로부미가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주도면밀하게 준비하여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반경

하얼빈 역에서 이토를 사살함으로써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 만방에 알리고 제국주의자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이후 일제의 여순법정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1910년 3월 26일 형장의 이슬로 순국하기까지 「동양평화론」을 저술하여 의거의

진정한 이유를 후세에 남겼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남산 분수대

 

 

 

 

 

 

 

 

 

 

목멱산 봉수대(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4호 / 시대 조선시대)

목멱산 봉수대 터는 서울에 있다고 하여 경봉수라고도 불렸었는데 전국의 봉수가 집결되었던 곳이다. 봉수제도는 신호체계에 따라

언제나 불을 피워서 변방의 긴급한 사정을 중앙까지 전달하여 알리며, 해당 지역의 주민들에게도 알려 빨리 대피하도록 하는

일종의 통신수단이다.

멀리 바라보기 좋은 높은 산봉우리에 봉수대를 설치하여 불을 피워서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오는 봉수는 남산에서 집결하였고, 남산 봉수대는 제1봉수대부터 제5봉수대까지 다섯 곳의 봉수대가 있었다.

제1봉수대는 함경도-강원도-양주 아차산, 제2봉수대는 경상도-충청도-광주 천림산, 제3봉수대는 평안도 강계- 황해도-한성

무악 동봉, 제4봉수대는 평안도 의주-황해도 해안-한성 무악 서봉, 제5봉수대는 전라도-충청도-양천 개화산에 이르는 봉수를

받았다. 이곳은 1993년에 김정호의 <청구도> 등의 관련 자료를 참고해서 남산의 다섯 개 봉수대 중 하나를 복원한 것이다.

 

 팔각정(국사당 터)

조선 태조 4년 12월 남산 산신을 목멱대왕으로 봉작, 목멱신사를 세워 국사당이라 불러오다가 일제가 조선신궁을 세우기 위해

1925년 7월 종로구 무악동 인왕산 중턱으로 옮김

 

N서울타워

 

 

 

 

 

발로 페달을 밟아 돌리면서 만드는 솜사탕이네요. 이젠 남산에 딱 하나 남은 것 같습니다.

각진 기계에서 전기모터로 돌려서 만드는 솜사탕 보단 더 부드러울 것 같습니다.

 

 

 

순환버스정류장

 

 아스팔트길로 진행합니다. (왼쪽으로 난 길은 남산한옥마을로 이어진 길입니다)

 

성곽순례길은 내림길로 진행하다가 남산고유소나무탐방로로 진행합니다. (성곽은 왼쪽길로 이어져있습니다 )

  

 

남측 포토아일랜드에서 보이는 전망

 

 

  

소나무 탐방로로 진행합니다.

이용안내 : 소나무 탐방로 희망자는 사전에 공원관리사업소에 신청 후 이용.  (소나무교실 운영) 02)3783-5954~5

개방시간 : 4~6월, 9~10월 매주 목요일 14:00~15:00(공원관리상 변경될 수 있음)

 

물맛이 시원하고 좋습니다.

 

 

우측 오름길로 진행합니다.(남산산악회 방향)

 

상춘약수터(식수부적합)

 

남산산악회 / 건물 우측으로 약수터가 있습니다. (공터를 가로질러 진행합니다.)

 

 

 

 돌에 새겨진 각자

성곽을 쌓은 돌에 새겨진 글자로 각자를 잘 들여다 보면 성곽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누가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공사구간 마다 담당한 지역의 이름과 감독관, 공사책임자, 기술자 같이 성곽을 쌓을때 관여했던 사람들의 직책과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국립극장  故이희태 선생 作

국립극장을 지으면서 건축비가 떨어져 화강암을 표면에 붙일 수 없게 되자 콘크리트를 일일이 쪼아서 화강암 분위기를 내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가 이곳에서 저격당했다.

 

공사중인 타워호텔 (故 김수근 선생 作)

 

길 건너편 자유총연맹 안으로 진행합니다.

 

 

故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자유센터 / 지금은 무슨 물류회사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국립극장과 자유센터

 

 자유센터 내에 있는 학생반공의 탑

 

학생반공의 탑을 지나 언덕으로 오릅니다.

 

 

팔각정(우수조망명소)

 

 

 

 

 

암문

 

 

 

장충체육관 고개 버스정류장 횡단보도 앞 (2구간끝나는 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