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P172
명자는 운구 행렬을 따라 걸으며 생전에 몽양을 떠올렸다. 1년 전 납치사건 때 벼랑에 굴러 심하게 다친 뒤 다리를 절룩거리며 인민당사에 나가겠다는 것을 말리자 그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안전하기야 관 속처럼 안전한 데가 없지. 그렇다고 지금부터 관 속에 누운 듯이 입 닫고 눈 닫고 귀 닫고 있을 수야 없지 않겠냐. 목숨은 하늘에 맡겨야지."
P174
분할점령이 영구 분단으로 흘러가는 와중에 분단을 피할 수 있는 선택의 기회들이 주어졌지만 불발의 역사에 그치고 만 것은 남북을 통틀어 그것을 현실화시킬 능력을 가진 정치지도자가 없었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다만 가장 근접한 인물이라면 그건 여운형이었을 것이다.
맹목적으로 자신을 정의로, 타인을 불의로 설정하는 지점에서 역사의 비극이 싹튼다. 미국과 소련이 남과 북을 점령한 것은 분단의 시작일 뿐이었다. 분단을 완성한 것은 어리석음과 아집과 독선이었다. 극악한 식민지 상태에서 갓 벗어난 사람들에게 대화와 타협의 매너를 기대하기는 무리였다. 관대함과 현명함의 미덕은 굶주림과 인권유린이 없는 환경에서 훈련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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