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초반에만 여섯번 거처를 옮겼다,
가는 곳마다 타관.
이번은 그래도 스물여섯해 눌러앉아
누추하지만 정든 고장 되었다.
짬 날 때마다 올라가 산책하던 윗동네
전지당할 모습까지 눈에 뵈던 나무들,
인사 없어도 걸음걸음 낯익던 사람들,
어느 늦가을 저녁 눈 한번 크게 뜨고 만난
텅 빈 뜰에서 혼자 붉은 입술로 노래하던 장미 한송이,
모두 땅 꽉 차게 울린 콘크리트 빌라들 밑에 깔리거나
작별인사도 없이 떠나들 갔구나.
이번엔 아랫동네 전부가 아파트 된다는 소문 나돌더니
집마다 '공가'스프레이가 뿌려졌다.
종이 관자에 이름과 위로 올라가라는 표지만 있던
다락방 교회가 사라지고
담장 너머로 단감들을 황금덩이처럼 내달던 집은
담장과 벽이 꺼져 내장이 험하게 드러났다.
눈 돌리고 조금 걸으면 만나는
몸에 비해 큰 둥지를 가슴 한가운데 품은 어린 느티에도
곧 제거된다는 금이 밑둥에 그어졌다.
까치 하나가 둥지에서 몸을 세워 밖을 살피고
양 옆에 새끼 둘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사할 엄두가 좀체 안 나나보다.
거슬리면 고개 슬쩍 돌리고 걷는 나의 눈보다
이제 어쩌지! 가슴이 좁다고 뛰는 심장들을 안고
더 볼 일 없는 동네 구석구석을 계속 살피는 까치들의 눈이
이 동네의 마지막 시신경이 아닐까?
이제 단풍의 잎맥처럼 마르다가 똑 떨어질
시신경의 어둠을 맛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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