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떼 - 신경림

한 용 석 2016. 3. 5. 23:13

  1.

  수천수만마리 새들이 갯벌에 앉아 있다.

  번갈아 날아올라 쏜살같이 물속으로 자맥질해 날렵한 몸매를 자랑하기

도 하고,

  낮은 하늘에서 둥글게 원을 그려 튼실한 날개를 확인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해가 기우뚱 수평선에 걸리고 서쪽 하늘이 새빨갛게 물들면

  수천수만마리 새들이 하늘로 올라 춤을 춘다.


  멀리서 보면 똑같은 작은 새요 더 멀리서는 그냥 점들이다.

  수천수만개의 크고 작은 점들이 갯벌에 앉아 있고

  크고 작은 점들이 춤을 춘다. 하지만


  어떤 새는 아직도 깃털 속에 백두산 두메 양귀비의 향내를 묻히고 있고, 또

  어떤 새는 부리에 바이칼호의 물고기 비린내를 물고 있을 것이다.

  사막의 모래가 발톱에 묻어 있는 새도 있고 초원의 마른 풀냄새가 몸에

배어 있는 새도 있을 것이다.


  봄이 오면 돌아갈 곳도 제 각각이리.

  북쪽나라 추운 물가가 그리운 새가 있고 고랑밭 한가운데 자리잡은 늪을

꿈에 보는 새가 있으리.

  먼 길을 날기에는 날개가 덜 회복된 새가 있고 몸이 가뿐히 잠시도 가만

있을 수 없는 새가 있으리.

  멀리서 보면 똑같은 점들이다.

  수천수만개의 크고 작은 점들이 갯벌에 퍼져 있기도 하고 하늘을 맴돌기

도 한다.


  2.

  생각도 다르고 생김새도 달라서

  매일처럼 입에 침을 튕기며 서로 발길질하고 주먹질하는 우리들도

  멀리서 보면 한갖 수천수만개의 크고 작은 점들일까.

  누가 옳고 무엇이 바른지도, 누가 잘나고 무엇이 비뚤어졌는지도 구별되

지 않는

  수천수만개의 크고 작은. 멀리서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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