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 백석

한 용 석 2016. 3. 7. 20:08

오리야 네가 좋은 청명 밑께 밤은

옆에서 누가 뺨을 쳐도 모르게 어둡다누나

오리야 이때는 따디기가 되여 어둡단다

 

아무리 밤이 좋은들 오리야

해변벌에선 얼마나 너이들이 욱자지껄하며 멕이기에

해변땅에 나들이 갔든 할머니는

오리새끼들은 장뫃이나 하듯이 떠들썩하니 시끄럽기도 하드란 숭인가

 

그래도 오리야 호젓한 밤길을 가다

가까운 논배미들에서

까알까알 하는 너이들의 즐거운 말소리가 나면

나는 내 마을 그 아는 사람들의 지껄지껄하는 말소리같이 반가웁고나

오리야 너이들의 이야기판에 나도 들어

밤을 같이 밝히고 싶고나

 

오리야 나는 네가 좋구나 네가 좋아서

벌논의 눞 옆에 쭈구렁벼알 달린 짚검불을 널어놓고

닭이짗 올코에 새끼달은치를 묻어놓고

동둑 넘에 숨어서

하로진일 너를 기다린다

 

오리야 고운 오리야 가만히 안겼거라

너를 팔어 술을 먹는 노장에 령감은

홀아비 소의연 침을 놓는 령감인데

나는 너를 백통전 하나 주고 사오누나

 

나를 생각하든 그 무당의 딸은 내 어린 누이에게

오리야 너를 한 쌍 주드니

어린 누이는 없고 저는 시집을 갔다건만

오리야 너는 한 쌍이 날어가누나

 

--------------------------------------------------------------------------

따디기 : 따지기. 이른 봄 얼었던 흙이 풀리려고 하는 무렵

욱자지껄하며 멕이기에 : 여럿이 한곳에 모여 계속 떠들기에. 여기서 '멕이다'는 어떤 행위가

                                  계속 이루어지는 상태를 뜻한다

장뫃이 : 장날이 되어 장터레 사람들이 모여 붐비는 것

숭 : 흉

논배미 : 두렁으로 둘러싸인 논의 한 구역

닭이 짗 올코 : 닭의 깃털을 붙여서 만든 올가미. '올코'는 '올가미'의 평북 방언

새끼달은치 : 새끼다랑치(새끼줄을 엮어 만든 끈이 달린 바구니) '다랑치'는 장방형에 운두가 높고

                  끈이 달린 바구니를 뜻하는 평북 방언

동둑 : 크게 쌓은 둑

하로진일 : 하루진일, 하루 진종일

소의연 : 소의원. 소의 병을 치료해주는 사람. 백석 시에는 '원'이 '연'으로 표기되기도 하는데, 이런 예로

            "건들건들 씨연한 바람이 불어오고"(칠월 백중)가 있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러나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 정희성  (0) 2016.03.08
신설동 밤길 - 마종기  (0) 2016.03.08
마지막 시신경 - 황동규  (0) 2016.03.07
신발 한켤레 - 고은  (0) 2016.03.06
새떼 - 신경림  (0) 2016.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