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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한 용 석 2016. 2. 16. 18:39

p140

"안돼. 안돼!" 와 "날 죽이지마, 죽이지 마!"라는 소리가 녹음실의 마이크 앞에 안전하게 서있는  남자의 목소리로 끼워맞춰진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이제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갱들은 그가 더이상 자신들을 해칠 수 없는데도 확인사살을 했다. 이미 살아날 가망을 없어졌는데 모든 것은 다시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 남자는 다시 살아났다. 마치 하느님이 더 쓸 데가 있어서 손을 잡아 일으켜세우는 것처럼.

 나는 행복한 로자 아줌마를 상상하며 즐거워했다. 전쟁 전 풍성했던 아줌마의 머리카락, 몸을 팔아 먹고 살지 않아도 되던 때의 행복한 로자 아줌마를.

"뭐든지 거꾸로 돌아가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나는 곧 죽게될 어떤 아줌마 집에 살고 있거든요."

 

P158

 "모하메드야, 내가 만을 결혼이란 걸 할 수 있게 되더라도 유태인 여자와는 할 수 없을 게다."

 "하밀 할아버지, 로자 아줌마는 이제 유태인이고 뭐고 할 것도 없어요. 그저 안 아픈 구석이 없는 할머니일 뿐예요. 그리고 할아버지도 이제 너무 늙어서, 알라신을 생각해줄 처지가 아니잖아요. 알라신이 할아버지를 생각해줘야 해요. 할아버지가 알라신을 보러 메카까지 갔었으니까 이제는 알라신이 할아버지를 보러 와야 해요. 여든다섯 살에 뭐가 무서워서 결혼을 못하세요?"

 "우리가 결혼해서 뭘 어쩌겠니?"

 "고통을 서로 나눠 가질 수 있잖아요. 젠장, 다들 그러려고 결혼을 하는 거래요."

 "나는 결혼하기에는 너무 늙었단다."

 하밀 할아버지는 다른 일은 뭐든 다 할 수 있지만 결혼을 하기에만은 늙었다는 듯이 말했다.

 

P167

조물주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잘 만든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조물주는 아무에게나 무슨 일이든 일어나게 하는가 하면,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기도 한다. 꽃이며 새를 만들기도 하지만 이젠 칠층에서 내려가지도 못하는 유태인 노파를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샤르메트 씨가 불쌍했다. 사회보장제도에서 나오는 연금이 있다 해도 그 역시 돈 없고 찾아오는 사람 없는 노인이었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그런 것들인데 말이다.

 

P171

롤라 아줌마는 집안일을 돌봐주고 나서 로자 아줌마를 깨끗하게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는 일도 해주었다. 아부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롤라 아줌마만큼 좋은 엄마가 될 것 같은 세네갈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엄마가 되는 일을 조물주가 반대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건 불공평한 일일뿐더러 행복해 질 수 있는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막는 일이다. 그녀에게는 입양할 권리조차 없었다. 여장 남자들은 너무 특이한 존재들이라서 그런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롤라 아줌마는 가끔씩 그 점에 대해 매우 슬퍼했다.

 

P172

그녀는 종교의식에 따라 묻히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나는 처음에는 그녀가 하느님이 두려운 나머지 종교의식 없이 매장됨으로써 하느님을 벗어나보려는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게 아니었다. 그녀는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미 때가 너무 늦었고,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으므로, 이제 신이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러 올 필요는 없다고 아줌마는 말했다. 정신이 맑을 때 로자 아줌마는 말하곤 했다. 완벽하게 죽고 싶다고, 죽은 다음에 또 가야 할 길이 남은 그런 죽음이 아니.

 

P246

일단 태어났으면 그뿐이지, 나딘 아줌마의 녹음실에서처럼 다시 뒤로 돌려 엄마 뱃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러나 가장 견딜 수 없는 일은 로자 아줌마처럼 온갖 세상 고생을 다하며 살아온 노인네에게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눈 주위를 울긋불긋하게 칠해놓으니 보기에 덜 끔찍했다. 그녀의 얼굴엔 이제 자연적인 모습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나는 유태인들이 하듯이 일곱 개의 촛불을 켜놓고 그녀 옆의 메트 위에 누웠다. 내가 수양엄마의 시체 옆에서 삼 주일을 지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로자 아줌마는 내 수양엄마가 아니었으니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렇게 오래는 내가 참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밀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느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계속 그녀가 그리울 것이다.

나딘 아줌마는 내게 세상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