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 - 백석

한 용 석 2016. 2. 3. 12:13

 아베는 타관 가서 오지 않고 산비탕 외따른 집에 엄매와 나와 단둘이서

누가 죽이는 듯이 무서움 밤 집 뒤로는 어늬 산골짜기에서 소를 잡아먹는

노나라꾼들이 도적놈들같이 킁킁거리며 다닌다

 

 날기멍석을 져간다는 닭보는 할미를 차 굴린다는 땅아래 고래 같은 기와집

에는 언제나 니차덕에 청밀에 은금보화가 그득하다는 외발 가진 조마구 뒷산

어늬메도 조마구네 나라가 있어서 오줌 누러 깨는 재밤 머리맡의 문살에 대

인 유리창으로 조마구 군병의 새까만 대가리 새까만 눈알이 들여다보는 때

나는 이불 속에 자즈러붙어 숨도 쉬지 못한다

 

 똔 이러한 밤 같은 때 시집갈 처녀 막내고무가 고개 너머 큰집으로 치장감

을 가지고 와서 엄매와 둘이 소기름에 쌍심지의 불을 밝히고 밤이 들도록 바

느질을 하는 밤 같은 때 나는 아릇목의 삿귀를 들고 쇠든밤을 내여 다람쥐처

럼 밝어먹고 은행여름을 인둘불에 구워도 먹고 그러다는 이불 우에서 광대넘

이를 뒤이고 또 누워 굴면서 엄매에게 뭇목에 두른 평풍의 새빨간 천두의 이

야기를 듣기도 하고 고무더러는 밝는 날 멀리는 못 난다는 뫼추라기를 잡어

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내일같이 명절날인 밤은 부억에 쩨듯하니 불이 밝고 솥뚜껑이 놀으며 구수

한 내음새  곰국이 무르끓고 방안에서는 일가집 할머니가 와서 마을의 소문을

펴며 조개송편에 달송편에 죈두기송편에 떡을 빚는 곁에서 나는 밤소 팥소

설탕 든 콩가루소를 먹으며 설탕 든 콩가루소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나 반죽을 주무르며 흰가루손이 되여 떡을 빚고 싶은지 모른다

 

 섣달에 냅일날이 들어서 냅일날 밤에 눈이 오면 이 밤엔 쌔하얀 할미귀시

의 눈귀신도 냅일눈을 받노라 못 난다는 말을 든든히 녀가며 엄매와 나는 앙

웅 우에 떡돌 우에 곱새담 우에 함지에 버치며 대낭푼을 놓고 치성이나 드리

듯이 정한 마음으로 냅일눈 약눈을 받는다

 이 눈세기물을 냅일물이라고 제주병에 진상항아리에 채워두고는 해를 묵

여가며 고뿔이 와도 배앓이를 해도 갑피기를 앓어도 먹을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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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나리꾼 : 소를 밀도살하는 사람

날기멍석 : 낟알을 널어 말릴 때 쓰는 멍석 '날길'는 '낟알'의 평남 방언

니차떡 : '찰떡' '인절미'의 평북 방언

청밀 : 꿀

조마구 : 조막, '조무래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제밤 : '한밤중'의 평안 방언

삿귀 :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의 가장자리.

쇠든밤 : 새들새들해진 밤. 말라서 생기가 없어진 밤

밝어먹고 : 발라먹고

은행여름 : 은행나무 열매 '여름'은 '열매'의 고어

광대넘이를 뒤이고 : 물구나무를 섰다 뒤집으며 노는 모습을 말한다

평풍 : '병풍'의 평안 방언

'천두' 천도복숭아

째듯하니 : 환하게

냅일날 : 납일. 둥지 뒤의 셋째 미일. 대개 음력으로 연말 무렵이 되는 이날 나라에서는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올렸고, 민간에서도 여러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냅일눈 : 납일에 내리는 눈. 이 눈을 받아 녹인 납설수는 약용으로 썻다. 납설수로 눈일 씻으며 안질에도

            걸리지 않으며 눈이 밝아진다고 믿었고, 납설수로 장을 담그면 구더기가 생기지 않는다 하여 장을

            담글 때도 사용했다

곱새담 : 짚으로 엮은 이엉을 얹은 담. '곱새'는 '용마르'의 평북 방언

버치 : 자배기보다 조금 짚고 아가리가 벌어진 큰 그릇

대낭풍 : 큰 양푼

눈세기물 : '눈석임물'의 평안 방언. 눈이 녹아서 된 물

진상항아리 : 가장 소중한 항아리

갑피기 : '이질'의 평북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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