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 : 2009년 10월 10~11일 (무박산행)
산행지 : 전남 영암 월출산
바람재를 지나 구정봉 갈림길에서 뒤로 보이는 천황봉의 모습.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과 강진군 성전면의 경계에 있는 산.
소백산계(小白山系)의 무등산 줄기에 속한다. 해발 809m로 높지는 않지만 산체(山體)가 매우 크고 수려하다. 삼국시대에는 달이 난다 하여
월라산(月奈山)이라 하고 고려시대에는 월생산(月生山)이라 부르다가, 조선시대부터 월출산이라 불러왔다. 천황봉(天皇峯)을 주봉으로
구정봉(九井峯), 사자봉(獅子峯), 도갑봉(道岬峯), 주지봉(朱芝峯) 등이 동에서 서로 하나의 작은 산맥을 형성하는데, 깎아지른 듯한 기암
절벽이 많아 예로부터 영산(靈山)이라 불러왔다.
동쪽으로 장흥, 서쪽으로 해남, 남쪽으로는 강진만을 가로막고 있는 완도를 비롯한 다도해를 바라보고 있다. 도갑사(道岬寺)·무위사(無爲寺)
등의 사찰과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 144) 등을 비롯해, 뾰족한 암봉(岩峰)과 골짜기를 따라 폭포와 유적들이 산재해 있으며, 곳곳에 얽힌
수많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신라 말기에는 99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하며, 북쪽의 용추폭포(龍湫瀑布), 동쪽의 구절폭포(九折瀑布), 남쪽의 금릉경포대(金陵鏡布臺) 등이
절경을 이룬다. 1978년에 천황봉으로 오르는 산 중턱에 길이 51m, 너비 0.6m의 구름다리를 놓았는데, 절벽 높이가 무려 120m나 된다.
예로부터 월출산 산자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경외감을 가져왔는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암에 관한 것이다.
월출산에는 움직이는 바위라는 뜻의 동석(動石) 3개가 있었는데, 중국 사람이 이 바위들을 산 아래로 떨어뜨리자 그 가운데 하나가 스스로
올라왔다고 한다. 그 바위가 바로 영암인데, 이 동석 때문에 큰 인물이 많이 난다고 하여 고을 이름도 영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1972년 1월 29일 전라남도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었다. 1973년 3월 남서쪽으로 3.5km 떨어진 도갑산(道岬山:376m) 지역을 합하여 도립공원
으로 지정되었다가, 1988년 6월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 한국의 산 에서 발췌
산행코스 : 천황탐방지원센터 - 천황사 - 구름다리 - 천황봉 - 구정봉 - 억새밭 - 도갑사
산행인원 : 웃는돌 회원 21명
산행안내 : 웃는돌 돌도리님
산행지도
산행기록
23:10 사당역출발(4번출구)
04:00 천황사 주차장 도착
04:40 산행시작
04:47 ←천황봉 3.1km, 구름다리 1.4km, 천황사 0.5km
04:56 천황교
←구름다리 1.0km, 천황봉 2.7km, 천황사 0.1km, →바람폭포 0.8k, 구름다리 0.9km, 천황봉 2.0km
05:16 →구름다리 0.4km, ←천황사지 0.6km
05:20 휴식
05:35 이동
05:40 →구름다리 0.1km
05:44 매봉 / 구름다리 삼거리 ←천황봉 1.8km, →천황주차장 1.9km, 천황사지 0.8km, ↙천황주차장 1.8km, 바람폭포 0.5km
06:34 이동
06:36 구름다리 건너편 이정표
↑천황봉 1.7km, 경포대 3.9km, ←천황사지 0.9km
06:47 이동
06:49 ←천황봉 1.5km, 경포대 3.6km, →구름다리 0.2km
06:56 ←천황봉 1.4km, 경포대 3.6km, →구름다리 0.3km
07:02 ←천황봉 1.2km, 경포대 3.4km, →구름다리 0.5km
07:20 휴식
07:39 이동
07:40 ←천황봉 1.0km, 경포대 3.2km, →구름다리 0.7km
07:44 ←천황봉 0.8km, 경포대 2.9km, →구름다리 0.9km
07:53 경포대삼거리
←천황봉 0.4km, ↙경포대 2.6km, →구름다리 1.3km
07:58 통천문삼거리
←천황봉 6.3km, →경포대 2.7km, 구름다리 1.4km, 천황주차장 3.4km
08:05 통천문
08:06 ←천황주차장 2.9km, 경포대 2.9km, 구름다리 1.6km, →천황봉 0.1km
08:10 천황봉(해발809m)
08:48 이동
08:57 ←구정봉 1.4km, 억새밭 2.5km, 도갑사 5.3km, →천황봉 0.3km
09:07 ←구정봉 1.0km, 억새밭 2.2km, 도갑사 5.0km, →천황봉 0.1km
09:17 휴식
09:32 이동
09:35 남근바위
09:40 바람재삼거리
↙경포대 2.5km, ↖구정봉 0.5km, 도갑사 4.5km, →천황봉 1.1km
09:50 구정봉갈림길(휴식)
←도갑사 4.2km, →경포대 2.8km, ↗배틀굴 0.1km, 구정봉 0.2km, 마애여래좌상 0.7km
10:00 배틀굴
10:05 구정봉
10:08 09:02분위치 마애여래좌상 방향으로 이동
10:15 마애여래좌상
10:25 10:08분위치
10:30 09:50분위치(구정봉갈림길)
10:34 능선(점심식사)
11:30 이동
↙천황봉 1.5km, →마애여래좌상 0.6km, 구정봉 0.1km, ↑도갑사 4.1km
11:33 →천황봉 1.7km, 구정봉 0.3km, ←억새밭 1.1km
11:39 →천황봉 1.9km, 구정봉 0.5km, ←도갑사 3.7km
11:45 →천황봉 2.2km, 구정봉 0.8km, ←도갑사 3.4km, 억새밭 0.6km
11:48 →천황봉 2.3km, 구정봉 0.9km, ←억새밭 0.5km
11:55 →구정봉 1.1km, ←도갑사 3.1km, 억새밭 0.3km
12:04 억새밭
12:09 이동
↑도갑사 2.7km, →경포대 4.3km, 천황봉 2.9km
12:26 ←도갑사 1.9km, →억새밭 0.8km, 구정봉 2.2km
12:36 계곡휴식(탁족)
←도갑사 1.4km, →억새밭 1.3km
12:45 이동
13:07 ←도갑사 0.6km, →억새밭 2.1km
13:10 도갑사 경내 뒤편(도갑사 도선 수미비, 부도탑)
→억새밭 2.3km, 구정봉 3.8km, 천황봉 5.3km
13:15 도갑사 경내 관람
13:30 도갑사 일주문(산행종료)
14:10 차량탑승 이동
19:40 서울도착
산행사진
산행초입 대나무 숲길
매봉 / 구름다리 초입
월출산의 여명
구름다리 아래로 보이는 영암읍의 모습
사자봉
매봉과 사자봉을 잇는 구름다리(길이 54m)
월출산 구름다리
월출산에서 본 일출
우측의 천황봉에서 도갑사 방면으로 이어진 서쪽 능선
천황봉
통천문
통천문 입구
금릉경포대 계곡
천황봉
월출산 소사지터
월출산 천황봉은 통일신라시내부터 임진왜란 전까지 국가에서 제사를 지낸 소사터로 전국 명산 대천의 제사터인 대사터 3곳, 중사터 24곳,
소사터 23곳중 유구가 확인된 유일한 장소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대로 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 왔는데 신라시대에는 천신이 산에 깃들었다
하여 산신제를 주로 드렸다. 신이 산에 깃들었다는 것은 천신환웅이 태백산에 강림하였고, 단군이 아사달 산의 산신이 되었다는 신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천황봉 제사터에서 발굴된 유물로는 통일신라시대의 토제 황로와 토우편, 고려시대의 녹청자 접시와 정자탁자편, 조선시대의 백자 접시 및
기와편 등이다. 출토된 유물은 제사관련 고급 기송과 다수의 기와편들로서 국가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삼국사기와 신동국여지승람의 기록과
일치하며 자리에는 제간(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방에서는 월출산 천황봉을 신성시 하여 이곳을 찾기 며칠전 부터 몸과 마을을 정결히 하여 국태민안과 가문의 번영 등을 기원하고 있다.
천황봉에서 바라본 월출산 서쪽능선의 모습
바람재를 따라 올라 향로봉(744m)과 우측으로 구정봉(705m), 능선뒤로 검게 보이는 주지봉(491m), 주지봉 우측 아래 솟은 노적봉(583m)이
시원하게 보입니다. 시야가 좋을경우에는 향로봉 좌측으로는 강진앞바다가 보이고 노적봉 뒷편으로는 목포앞바다가 보인다고 합니다.
천왕봉을 내려서서 능선길에서 보이는 강진군의 모습
능선길 뒤로 보이는 천황봉의 모습
좌측의 향로봉과 중앙부분의 구정봉
남근바위
바람재 능선길
바람재
바람재와 뒤로보이는 천황봉
구정봉 갈림길에서 뒤로 보이는 천황봉
배내굴
이 굴은 옛날 임진왜란때 이 근방에 사는 여인들이 난을 피해 이 곳에 숨어서 배를 짰다는 전설에서 생긴 이름이다.
굴의 깊이는 10m쯤 되는데, 굴속에는 항상 음수가 고여 있어 음굴 또는 음혈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는 굴 내부의 모습이
마치 여성의 국부와 같은 형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더구나 이 굴은 천황봉쪽에 있는 남근석을 향하고 있다고 한다.
배내굴 내부의 모습.
구정봉을 오르며 보이는 의자바위
구정봉에 얽힌 전설
옛날 월출산 아래 구림마을에는 도술에 능한 동차진이라는 젊은이가 살았다. 동차진이 구정봉에서 함부로 도술을 쓰는 것을 본
황상제는 공명심과 만용이 화를 부를 것을 경계하여, 아홉 번 번개를 쳐서 죽였다. 그 때 생긴 번개자국이 웅덩이가 되었다고 한다.
동차진은 구림(鳩林)에 유배되어 내려와 살던 어느 장군의 유복자로 태어났다. 동차진은 낳을 때 겨드랑이에 깃털을 달고 왔으며
백일이 되자 이빨이 났다. 세 살이 되자 멧돌을 번쩍들어 올렸다. 일곱 살 나던 해 어른들처럼 나뭇짐을 지고 다녀 ‘구림에서 장사났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평범한 자식으로 기르고 싶었는데 어느날 그의 집에 들른 노인의 말에 생각을 달리 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사람이란 자고로 때를 만나야 하고 사람을 만나 기량을 닦지 못하면 비원에 빠지게 되는 것이오” 며 아들을 자기에게 맡기라
이르는 것이었다. 사람을 만나 가르침을 받지 못하면 자식이 비뚤어진다는 말에 놀란 노모는 동차진을 노인에게 맡겼다.
동차진은 괴 노인을 따라 금강산에 들어가 10녀 도술을 익혔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동차진은 그의 노모를 찾아 집에왔다. 동차진의 어머니는 자식읠 능력을 실험하기 위해 자식에게 내기를 걸었다.
“차진아, 그 동안 쌓은 네 능력을 보고 싶구나, 내가 밥을 지을 동안 너는 저 산봉우리에 올라 석성을 쌓아라”
이 시합에서 노모가 이기자 차진이 억울해 하며 돌을 내던지고 깨뜨렸다. 이를 본 동차진의 어머니는 아들을 타일렀다.
“듣거라, 항시 자만과 만용이 사람을 망치는 법이란다” 이 무렵 북쪽 오랑캐들이 국경을 넘어 침공해 왔다.
이를 전해들은 노모는 아들의 도술을 쓸곳이 생겼다고 기뻐 나가 싸우도록 일렀다.
“그까짓 오랭캐쯤은 내가 직접 나가지 않고도 섬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어머니께 이르고 구정봉에 올라간 동차진은 한동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노략질하던 오랑캐들의 머리위에 돌맹이가 수없이 쏟아져 몰살시켜 버렸다. 이때 하늘에서 뇌성이 울리며
옥황상제의 노기서린 외침이 울려왔다.
“네 이놈 동차진아! 네가 익힌 도술은 바르고 정정당당하게 쓰라는 것이었지 오만 방자하게 쓰라는 것이 아니다.
네놈의 하는 행실을 보아하니 인간을 규도하는데 도술을 쓰기보다 네 공명심이나 만용을 부리는데서 화를 부를 것인즉 살려 둘 수 없다.”
벼락이 내려 아홉 번 때려 죽여버렸다.
이처럼 비운에 죽고만 동차진은 사람들이 이 봉에 올라올 때마다 세 번을 움직여 다시는 자신과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응징하였으며
그 때문에 신령암, 삼동안이라 한다는 것이다.
어떤이는 삼동석이 구정봉을 이르는 것이 아니고 월출산에는 열 사람이 움직이나 한사람이 움직이나 그 흔들림이 똑같은 동석 세 개가 있어
이를 이르는 것이라 한다. 그 바위를 확실히 지적하지 못하지만 영암이란 지명도 이 삼동석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구정봉을 오르려면 이 굴을 지나야 합니다.
구정봉 아래쪽에 있는 마애여래좌상 / 국보 제144호
이 불상은 바위면을 약간 파서 직사각혀의 방을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새겼다. 전체 높이는 8.6m이며, 불상의 높이는 7m인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마애불이다.
네모진 얼굴은 몸 전체에 비해 약간 큰 편이며, 긴 눈은 감은 듯이 내리뜨고 눈초리가 올라가 있다. 입은 꽉 다물고 있어
근엄하고 무게 있는 표정이다. 머리 위의 육계가 큼직하고 귀는 어깨에 닿아 이으며, 목은 짧게 표현되어 있지만 가슴과
어깨는 늠름하게 쭉 펴고 있다.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린 옷자락은 음각선으로 표현되어 가슴과 왼팔을 거쳐 무릎 아래까지
흘러내려 대좌를 덮었다. 다리는 결가부좌를 하였고, 왼손은 배꼽 아래에 놓고 오른손으로 무릎을 감싼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광배에는 연꽃잎과 당초문이 새겨져 있으며, 둘레에는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 여래상은 몸체의 부분적인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고, 당당한 인상을 주는 걸작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마애여래 좌상 앞에는 기도를 할 수 있는 터가 마련되어 있다.
1조(햇살조) 점심
억새밭
도갑사 도선수미비
도갑사 도선수미비 / 보물 1395호
도갑사를 중창한 수미선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이다.
이 비가 완성된 해는 조선 효종4년(1653)이었지만 만드는데 무려 17년이 걸렸다. 비의 돌거북은 여의주를 입에 물고 고개를
들어 절이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다. 돌거북의 두툼한 등에는 가장자리가 말리 연꽃잎이 새겨져 있다. 이수(용의
모습을 아로새긴 비의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에 새겨진 두마리의 용은 여의주를 물고 하늘을 향하고 있다. 이와같이 구름이나
연꽃잎이 아닌 연잎으로 비의 몸체를 받치고 있는 것은 주로 조선시대의 비에서 볼 수 있느 양식이다. 비의 높이는 4.8m, 폭은
1.42m에 달하며 약 1500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도갑사 부도
도갑사 수미왕사비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2호
영암출신 수미왕사의 활동과 자취를 기록한 비이다. 비문에 따르면 수미왕사는 조선 세조때의 승려로 13세에 도갑사에 출간하여
법주사 등지에서 경전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도갑사로 돌아와 황폐하고 낡은 절을 고쳐 다시 새롭게 하였다. 불경의 한문을 한글로
풀이하아는 기구인 간경도갑에서 불경을 번역하는 일을 하였다. 또 세조는 그에게 묘각이라는 호를 내리고 황사로 책봉하였다고 한다.
이 비는 돌거북인 귀부와 비의 몸체, 그리고 용을 아로새긴 비의 머리부분이 이수가 잘 남아 있다. 돌거북의 머리는 눈살을 심하게
찌푸린 용의 얼굴로 표현되었으며, 목이 짧아 등 껍질이 꽤 두꺼워 보인다. 이수에는 꽃잎처럼 화사하게 피어오른 구름무늬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 용 두마리가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비의 총 높이는 3.34m, 비신의 높이는 2m, 비신의 폭은 1.08m,
비신의 두께는 21cm이다. 비의 건립은 숙종 15년(1689)에 만들기 시작하여 숙종19년(1693)에 세운 것이며, 그 양식적 특징은
고려 전기에 유행하였던 형식과 비슷하다.
도갑사 경내
도갑사는 통일신라말 도선국사(826~898)가 헌강왕 6년(880)에 창건했다고 전해져 오고 있으며, 1999년 대웅전 뒤편 건물지 발굴조사에서
백제시대 기와편이 출토되어 통일신라시대 이전에 이미 사찰이 있었음을 추정하고 있다.
도갑사 일주문
월출산 - 노산 이은상
월출산 구정봉이 창검을 들고
허공을 찌를 듯이 늘어섰는데
천탑도 움직인다 어인 일인고
아니나 다를세라 달이 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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