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도

지리산 7암자 산행 지도

한 용 석 2009. 5. 26. 23:06

 

작전도로 675m 고도까지 버스로 올라가서 2.7km↑등산하여 도솔암(1180m)~2.2Km↓하산하여 영원사도착 중식하고 삼정산및 5암자를 순례

예정시간은 7~8시간예상...산행거리 최대 15Km예상됨(삼정산포함) 하산완료 17시30~18시 예상함.

식사후 서울출발 18시40분~19시....서울도착 22시 40분 롯데도착...

참고로 힘든 사람은 삼정산 왕복 700m 생략하고 상무주암에서 기다리면 됩니다...그후는 계속 내리막길임다.

 

 

도 솔 암

사립문을 통과하면 해우소와 창고(?) 좌측에 샘터가 있으며 우측으로 돌계단을 오르면 도솔암의 본채가 있다.

마당이 넓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지리의 조망도 좋다.

<도솔암> 영원사의 속암으로 이곳은 영원사에 유명한 방광사리탑을 남긴 청매스님의 수도처로 유서가 깊다.

영원사와 함께 전란에 잿더미가 됐다가 최근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영 원 사

<영원사 靈源寺>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지리산 중턱 해발 920m에 위치한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시대 고승이었던 영원대사가 건립했다고

하여 절 이름도 영원사라고 한다.

한때 내지리內智異에서는 제일 큰 사찰이라고 했다. 이 절 규모는 너와로 된 선방禪房이

9채에 100간이 넘는 방이 있었으며, 이곳에서 도를 닦은 고승이 많았다고 한다.

고승들이 스쳐간 방명록이라고 할 수 있는 조실안록組室案錄을 보면 부용영관芙蓉靈觀, 서산대사, 청매靑梅,

사명四溟, 지안志安, 설파 상언雪坡 常彦, 포광包光스님 등 당대의 쟁쟁한 고승들이

109명이나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는 기록이 있다.

영원사가 그 위용을 잃게 된 것은 여수 반란사건 때 반란군이 아군의 공격에 쫓겨 이곳까지 찾아와

절터를 아지트로 삼으면서, 건물 등을 작전상 모두 불태워 없애면서부터다.

그 후 1971년 중건 하였다고 전한다. 이곳에는 많은 부도들이 있는데 원당형의 둥근 석탑이 5기가 있으며,

대는 2층 탑신을 가진 조립형으로 되어 있다. 이들 부도들은 영원사의 유물로 추정되며, 영암당탑, 설파당탑,

중봉당탑, 청계당탑, 벽허당탑, 청매탑 등 이름있는 스님들이 수도하던 곳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고승의 호를 딴 부도들이 있다. 엽송설화 30권을 기록했다는 구곡각운대사의 사리를 보존했다는

상무주암의 필단사리 3층 석탑이 방광放光했다는 이야기 등도 지난날의

유서 깊은 영원사의 선풍禪風을 말해주고 있다.

 

상 무 주 암

<상무주암 上無住庵> 부처님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경계(上)이고, 머무름이 없는 자리(無住)라는 뜻이다.

지리산 영원사의 末寺(말사)로써 삼정산 아래 위치한 상무주암(上無住庵)은 고려시대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창건하고 큰 깨침을 얻은 곳이며 고려때 지눌선사가 2년여 머물렀다는 곳이다.

그러나 별다른 부속건물도 없고 단정한 시골집 별채의 참선 수도 암자에 불과한 것 같은데 오히려 산중의 호젓한 별장 같은 느낌마저 드는 곳이니 무릇 사찰이 위치한 곳은 역시 명당인 양 인간속세를 벗어난 듯한 무릉도원 같다.

 

문 수 암

문수암에는 도봉스님이 84년부터 23년째 수행하고 있는 절이란다.

석축위에 아담하게 세워져 있는 문수암 옆에 거대한 석굴이 있는데 석간수를 받아내는 샘터도 있다.

이 석굴은 임진왜란 때 마을 사람 1000명이 피난하였다고 전하는 천인굴(千人窟.. 일명 천용굴)이라고 하나

아직 굴의 크기나 전설, 생성 유래에 대해 정확히 조사되지 않은 채 있다고 한다.

도봉스님은 이 굴에 대한 소문(?)은 잘못된 것이라면서 천인용굴(千人用窟)이라 하여 천년동안(즉, 오랫동안)

사람들이 이 굴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삼 불 사

<삼불사> 조선시대 창건한 절이라는데 정확한 기록은 없다.

지금은 비구니의 참선 도랑으로 고지대에 있는 절이다.

 

약 수 암

<약수암 藥水庵>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번지 지리산 줄기의 작은 산중턱 1㎞ 지점에 위치해 있다.

1937년에 함양(咸陽)의 불자 한정희(韓貞熙)의 시주금으로 중수하였으며,

1974년에 운영(雲榮) 비구니 스님의 두 번에 걸쳐 중수하였다.

경내에는 항상 맑은 약수가 솟아나는 약수샘이 있어 약수암이라 했다고 한다.

 

실 상 사

<실상사> 신라 흥덕왕 3년 (828년)에 증각대사님이 9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산문을 개산하면서 창건했다.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가 버린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절을 세웠다고 전한다. 정유재란 때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을 조선 숙종 26년(1700년)에 다시 지었으나,

고종 19년(1882년)에 거의 불타 버려 일부만 남게 되었다. 현재 통일 신라 시대 작품으로 국보 제10호인 높이

약 5m의 백장암 3층석탑과 보물 11 여점을 포함 단일사찰로는 가장 많은 17점의 지방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