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누구에게나 봄이어야 한다 _ 박노해

한 용 석 2018. 3. 19. 10:48

우리의 소원은 부자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소원은 출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소원은 올해도 농사짓는 것이다


허리 숙여 불볕 이랑을 기며

태풍 장마에 애간장을 졸이며

누구도 대신하고 싶지 않은 일

올봄에도 내 땅에 씨 뿌리는 것이다


누가 내 가난한 소망을 가로막는가

누가 내 소박한 봄날을 깨드리는가

누가 사람을 먹여 살려온 이 들녘에

사람을 죽이는 전쟁기지를 세우려 하는가


너희가 무력을 내 땅을 강점하고

너희가 총칼로 내 봄을 짓밟는다면

이제 우리는 나라도 없다

이제 우리는 정의도 없다


미군의 주권, 미군의 안보에

내 땅에서 울부짖고 끌려가고 쫓겨나는 나라라면

나라도 없는 우리는 이제부터 평화의 독립군이다

농사를 내려놓고 삽도 호미도 내려놓고

먼저 평화의 농사를 짓겠다


쫓겨난 빈손으로 촛불을 들고

너희들의 미사일

너희들의 전투기

너희들의 탐욕과 전쟁의 뿌리를

내 안에서 조용히 불사르겠다


불살라, 이 새싹 같은 촛불을 들고

저 우는 들의 눈물을 기름 부어

너희들 무기의 어둠을 불사르겠다

우리들 인간의 봄을 시작하겠다


이제 나라도 민주도 없는 우리는

미군의 총칼에 울부짖고

미군의 폭력에 피 흘리는

지구마을 어린 것들을 보듬어 안고

국경 없는 평화의 봄을 씨 뿌리겠다


이 들녘에 떠오르는 아침 해는

누구도 홀로 가질 수 없듯이

이 들녘에 피어 오르는 봄은

누구도 홀로 맞을 수 없듯이

대추리, 도두리에도 새만금에도

전쟁의 이라크에도 쿠르디스탄에도

팔레스타인에도 아프가니스탄에도


봄은 어디에서나 봄이어야 한다

봄은 누구에게나 봄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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