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티셔츠를 찾아다녔다.
내일의 약속을 위해서
옷가게에 들어갔다. 흰 티셔츠가 흰 티셔츠끼리
모여 있었다. 가슴에는 주머니가 없거나 있었다.
옆 가게에도 들어갔다. 흰 티셔츠가 다른 티셔츠와
무더기로 쌓여 구겨져 있었다.
구겨진 옷은 조금 더 저렴했다.
얼굴 없는
마네킹은 어떤 옷이든 잘 어울렸다. 내 얼굴에
잘 어울리는 티셔츠를 찾아다녔다.
기본 티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죠. 점원이
말했다. 흰 티셔츠를 찾아다니다 집에 있는
흰 티셔츠가 기억났다.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집으로 돌아와
옷장 서랍을 열어보았다.
흰 것들을 모두 꺼내보았다.
흰 티셔츠는 저마다 다른 얼룩을 갖고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얼룩에다 치약을 묻혀
비볐다. 지워지고 있는 얼룩을 이목구비가 허옇게 바래가는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오래 지켜보았다.
지워지는 얼룩은
지워졌고 지워지지 않는 얼룩은
지워지지 않았다.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은
자장 자주 입어 가장 쉽게 얼룩이 졌다.
탈수된 티셔츠를 세탁기에서 꺼내어
탁탁 털었다. 창가에 걸어두었다. 티셔츠가
펄럭였다. 말라가면서 옷은 더 환해졌다. 내 방에는
얼굴 없는 빨래들의 환한 냄새가 퍼져갔다.
내일은 약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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