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다르다 - 박노해

한 용 석 2016. 9. 5. 20:22

초등학교 일학년 산수 시간에

선생님은 키가 작아 앞자리에 앉은

나를 꼭 찝어 물으셨다

일 더하기 일은 몇이냐?


일 더하기 일은 하나지라!

나도 모르게 대답이 튀어나왔다


뭣이여? 일 더하기 일이 둘이지 하나여?

선생의 고성에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예, 제가요, 아까 학교 옴시롱 본깨요

토란 이파리에 물방울이 또르르르 굴러서요

하나의 물방울이 되던디라, 나가 봤당깨요


선생님요, 일 더하기 일은요 셋이지라

우리 누나가 시집가서 집에 왔는디라

딸을 나서 누님네가 셋이 되었는디요


아이들이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으로 손바닥에 불이 나게 맞았다


수업시간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내 손바닥을 어루만졌다

어쩌까이, 많이 아프제이, 선생님이 진짜 웃긴다이

일 더하기 일이 왜 둘뿐이라는 거제?

일곱인디, 우리 개가 새끼를 다섯 마리 낳았응께

나가 분명히 봐부렀는디

쇠죽 끓이면서 장작 한 개 두 개 넣어봐

재가 돼서 없어징께 영도 되는 거제


그날 이후, 나는 산수가 딱 싫어졌다


모든 아이들과 사람들이 한줄 숫자로 세워져

글로벌 카스트의 바코드가 이마에 새겨지는 시대에

나는 단호히 돌아서서 말하리라


삶은 숫자가 아니라고

행복은 다 다르다고

사람은 다 달라서 존엄하다고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람 부는 날 - 나태주  (0) 2016.11.13
꽃을 보려면 - 정호승  (0) 2016.09.10
길이 끝나면 - 박노해  (0) 2016.09.05
경운기를 보내며 - 박노해  (0) 2016.08.29
구도자의 밥 - 박노해  (0) 2016.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