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갓집 - 백석

한 용 석 2016. 4. 26. 18:13

  내가 언제나 무서운 외갓집은

  초저녁이면 안팎마당이 그득하니 하이얀 나비수염을 물은 보득지근한 복

쪽재비들이 씨굴씨굴 모여서는 짱짱 쇳스럽게 울어대고

  밤이면 무엇이 기왓골에 무릿돌을 던지고 뒤울안 배나무에 째듯하니 줄등

을 헤여달고 부뚝막의 큰솔 적은솥을 모주리 뽑아놓고 재통에 간 사람의 목

덜미를 그냥그냥 나려눌러선 잿다리 아래로 처박고

  그리고 새벽녘이면 고방 시렁에 채국채국 얹어둔 모랭이 목판 시루며 함지

가 땅바닥에 넘너른히 널리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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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득지근한 : 보드랍고 매끄러운

복쪽재비 : 복족제비, 복을 가져다주는 족제비

기왓골 : 기왓고랑

무릿돌 : 우박과 같이 잘게 부서진 것이 무리를 지어 있는 돌

째듯하니 : 환하게

헤여달고 : 켜 달고. 헤다는 켜다의 방언

재통 : 재래식 변소에 걸쳐놓은 두 개의 나무

고방 : 광

채국채국 : 차곡차곡

모랭이 : 함지 모양의 작은 나무그릇

목판 : 음식을 담아 나르는 나무그릇

넘너른히 : 여기저기에 마구 널려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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