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와 메추라기가 대붕을 보고 함께 웃으며 말한다. 우리는 한껏
날아보아야 겨우 느릅나무나 박달나무에 이를 뿐이고, 어떤 때는
거기에도 못 미처 땅에 내려앉고 마는데, 9만 리를 날아 남쪽으로
간다니! 가까운 숲으로 놀러 가는 사람은 세 끼 먹을 것만 가지고 가도
돌아올 때까지 배고픈 줄 모르지만, 1백리 길을 가는 사람은 석 달 먹을
양식을 준비해야 한다. 매미나 메추라기 같은 미물이 어찌 이를 알 수
있겠는가? 조금 아는 것으로 많이 아는 것을 헤아릴 수 없고, 짧은 삶으로
긴 삶을 헤아릴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아침에 잠깐 났다가 시드는 버섯은
저녁과 새벽을 알 수 없다. 여름 한철 사는 메뚜기는 봄과 가을을 알 수
없다. 이것이 짧은 삶이다. 초나라 남쪽에 명령이라는 신령한 거묵이
살았다. 이 거북에게는 봄과 가을이 각각 7백년 씩이었다. 그보다 더 오랜
옛날에 춘이라는 큰 나무가 있었다. 이 나무에게는 봄과 가을이 각각
8천 년씩이었다. 이런 것이 긴 삶이다. 그런데 팽조가 7백년이나 8백년씩
을 살았다고 사람들이 오래 살았다면 부러워하니 이 아니 슬픈가?
[장자 / 소요유]
대붕은 처음에 북명에 사는 물고기 곤이었다. 나중에 대붕이 되
어 날아간 곳은 남명이다. '하늘의 연못' 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남명은 대붕이 가보지 않은 곳. 가능성의 바다다. 요즘 말로 하자면
블루오션이다.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은 남이 감히 상상하지
않은 블루오션을 꿈꾼다는 점이다. 그 상상은 그것이 이루어지기 전
까지는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영악한 현실주의자들은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노자도 "뛰어난 사람은 도를 들으면 힘써 행하려 하지 않고,
어중간한 사람은 도를 들으면 이런가 저런가 망설이고, 못난 사람은
도를 들으면 몹시 비웃는다. 이런 까닭에 웃음거리가 되지 않는 것은
도라고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자신은 '건전한 상식'에 묶어두는 사람은
발전할 수가 없다. 오히려 비범하게 날아오르려는 사람의 발목을 잡거나
비웃는다. 매미와 메추라기가 대붕을 비웃듯이. 상상하라! 그리고 변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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