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애덤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 줬어요? 유쾌한 페미니스트이 경제학 뒤집어보기 -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희정 옮김
3장 차별을 합리화하는 경제학자들
공급이 제한되어 있으며,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즐거움을 주거나 고통을 피하게 해 주는 것들과 관계가 있었다.
'경제'를 뜻하는 단어 '이코노미 economy'는 그리스어로 가정이라는 의미의 '오이코스oikos'에서 유래됐지만, 경제학자들은 집에서 일어나는 일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였다. 여성들은 내재된'자기희생적 특성' 때문에 사적 영역에 묶이게 되었고, 이에 따라 여성은 경제적인 존재로 간주되지 않았다.
자녀 양육, 청소, 빨래, 다림질 등의 가족을 위한 활동은 사고팔거나 교환할 수 있는 유형의 재화를 생산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1800년대의 경제학자들은 여성이 경제적 번영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경제적 번영은 오직 운반이 가능하고 공급이 제한되어 있으며,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즐거움을 주거나 고통을 피하게 해 주는 것들과 관계가 있었다.
이 점으로 인해 여성들이 시간과 노동력을 들여 해 주는 모든 일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남성이 노동한 결과는 측정할 수 있고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다. 여성이 노동한 결과는 보이지 않는다. 털어 낸 먼지는 어느새 다시 쌓인다. 밥을 해 먹여도 금방 또 배고파한다. 아이들은 재우면 다시 일어난다. 점심을 먹으면 설거지를 해야 한다. 설거지를 마치면 저녁 식사를 준비할 시간이다. 이제 또 설거지를 해야 한다.
가사노동은 그 성격상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성의 노동은 '경제적 활동'이 아니며, 이들이 지닌 아름답고 다정다감한 본성이 자연스레 발현된 것에 불과하다. 여성은 이 일을 언제까지나 계속할 것이기 때문에 그 성과를 측정하는 데 시간을 쓸 필요가 없다. 이것은 경제적 논리와 상관없는 다른 곳에서 나온다.
여성스러움이랄까, 아무튼 뭐 그런.
P59
결혼한 여성이 퇴근하면 무엇을 하는가? 부엌을 치우고 다림질을 하고 아이들의 숙제를 돕는다. 결혼한 남성이 퇴근하면 무엇을 하는가? 신문을 보고 텔레비전을 보고 잠깐씩 아이들과 놀아 줄 것이다.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은 여가 시간을 집안일에 많이 쓰고,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피곤해진다. 베커는 바로 이 점 때문에 여성에게 더 낮은 보수를 주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고 부엌을 치우느라 여성은 남성보다 더 피곤하다. 따라서 근무 시간에 남성과 동일한 노력을 기울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베커의 생각이었다.
동시에 경제학자들은 이와 정반대의 설명도 내놓았다. 여성이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는 이유는 그들의 수입이 더 낮기 때문이다. 여성의 수입이 더 낮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여성이 집안일을 하는 것이 가족 전체로 볼 때 손해가 덜하다는 설명이다.
다시 말해, 여성의 보수가 낮은 것은 집안일은 더 많이 해서고, 여성이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는 것은 보수가 낮기 때문이다.
시카고 학파의 설명은 자가당착적이다.
P62
성인 한 명은 가사노동에, 또 다른 한 명은 직장생활에 전념하는 것이 실제로 '가치 있는' 일인가? 세상이 완전히 합리적이라고 가정하더라도, 가족 중 성인 한 명은 모든 시간을 무보수 가사노동에 쓰고, 다른 성인 한 명은 모든 시간을 집 밖에서 보수를 받는 노동에 쏟아붓는 것이 과연 이치에 맞는가? 누가 무슨 역할을 맡는지 따지지 않는다 해도, 이 분업 관계가 진정 효율적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아이가 열넷 정도 되고, 식기세척기가 없고, 천기저귀를 날마다 마당에 있는 커다란 솥에서 삶아야 된다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집안일이 그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면 그 일에만 전념하는 사람이 있는 게 더 효율적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경우 한 사람이 그 일을 전문적으로 맡는 것이 가족 전체의 생산성을 높일 것이다. 그러나 자녀의 수가 적어진 현대 사회의 가정에서는 그다지 큰 이득을 볼 수 없는 형태의 분업이다.
그러나 시카고 학파 경제학자들은 그다지 진보적인 사고를 하지 않았다.
P65
경제학적 서술에 등장하는 개인은 육체가 없고, 따라서 성별의 구분이 없다. 그러나 경제적 인간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남성성과 동일시하는 문화적 특성들을 모두 지녔다. 그는 합리적이고, 냉담하고 객관적이고, 경쟁적이고, 독립적이고, 이기적이고, 상식에 의해 움직이고,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 목표인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그것을 얻기 위해 단호히 행동한다.
그가 갖지 않은 특성 - 감정, 육체, 의존성, 연대감, 자기희생, 부드러움, 자연, 예측 불가능성, 수동성, 인간관계 등 - 은 모두 전통적으로 여성과 결부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이것이 단지 우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여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시카고 학파 경제학자들은 여성도 경제적 인간(남성)과 동일한 존재인 양 그대로 모델에 추가했다. 그러나 그것은 게리 베커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로 드러났다. 애덤 스미스 시대부터 경제적 인간에 관한 이론은 늘 그를 돌보고 그가 필요할 때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옆에 있다는 가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경제학의 일부가 되고 싶다면 경제적 인간처럼 되어야 한다. 그의 남성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우리가 경제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뿌리에는 항상 또 다른 이야기가 존재한다. 바로 경제적 인간이 그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든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다.
그가 "이 밖에 다른 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만든 모든 것.
그가 이성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감정이 되어야 한다. 그가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육체가 되어야 한다. 그가 독립적이려면 누군가는 복종해야 한다. 그가 이기적이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희생해야 한다.
애덤 스미스가 저녁 식사에 들어간 노동을 가치 없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를 위해 스테이크를 요리해야만 한다.
5장 경제학이 여성을 가뿐히 무시하는 방법들
P93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메릴린 웨어링은 짐바브웨의 로펠트에 사는 한 젊은 여성이 제공하는 무보수 노동을 예로 든다. 그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11킬로미터를 걸어서 양동이 하나에 물을 채운다. 집에 돌아오면 세 시간이 지나있다. 물론 맨발이다. 땔감을 모으고, 설거지를 하고, 점심을 차리고, 또 설거지를 한다음 채소를 수확하러 나간다. 또 물을 길으러 나선다. 돌아와서 저녁을 짓고 동생들을 재우면 밤 9시가 된다. 경제학적 모델에 따르면 그녀는 일을 하지 않는 비생산적·비경제적 존재다.
가사 노동을 GDP에 포함하지 안는 것의 가장 주요한 논거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 사회에서 수행되는 가사노동의 양은 거의 항상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그 수치를 통계에 한 번도 포함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경제학자들은 남성이 자기 가사 도우미와 결혼하면 그 나라의 GDP가 감소하고, 자기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내면 GDP가 상승한다고 농담을 하곤 한다. 농담이기는 하지만 경제학자들이 성 역할을 보는 관점을 잘 나타내는 예다.
P96
경제가 번영하려면 한 사회는 사람, 지식, 그리고 신뢰를 갖춰야한다. 그리고 이 자원들은 상당 부분 무보수 가사노동의 결과로 양성된다. 행복하고 건강한 아이들은 모든 긍정적 성장의 기반이다.
P102
여성들은 노동 시장에 진입했지만 남성은 그에 상응하는 정도로 집안일에 진입하지 않았다. 일과 가정 사이의 경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일과 가정 사이의 경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대신 이것저것 누덕누덕 기워서 쓰고 있을 뿐이다.
8장 남자는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라는 착각
P155
지구는 사실 타원형이다. 그리고 산과 계곡과 녹아 가는 빙산등으로 울퉁불퉁하다. 그러나 우리는 지구가 둥글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구는 둥글다고 말하더라도, 실제로 배를 타고 항해할 때는 - 혹은 크루즈 미사일을 조준하고 발사할 때는 - 지구가 완전한 구체인 것으로 가정하고 그린 지도에 의존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구 표면의 불규칙한 면들을 측정하고, 어떤 식으로라도 그것을 지도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 경제적 인간은 그냥 그대로 둔다. 경제적 인간을 근거로 만들어진 모델은 세계경제를 이끌어 나가는 기초로, 그리고 가난한 나라들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사용된다.
9장 어떻게 자극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
P169
약 100년전 하노이에 흑사병이 돌았다. 병이 퍼지는 것을 막기위해 당국은 쥐잡이들을 고용해, 도시의 하수구 등지에서 창궐하는 쥐를 죽이는 임무를 주었다. 곧 분주하게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들이 쥐를 잡는 속도보다 쥐들이 번식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 하루에 수천 마리를 죽이는데도 쥐의 숫자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프랑스 식민 당국은 주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쥐꼬리 하나당 보상을 내건 것이다. 처음에는 아주 성공적인 듯했다. 매일 수천개의 쥐꼬리가 들어왔으니까. 그러나 당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거리에 꼬리가 잘리 채 기어 다니는 쥐가 넘쳐 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꼬리를 잘라 보상을 챙길 목적으로 쥐를 기르기까지 했다.
많은 경우 보상을 받기 위해 필요한 일만을 하고,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딱 투입하는 만큼만 받게 되기 때문이다. 하노이의 쥐잡기 프로그램은 종료됐다.
이스라엘의 한 보육원에서는 퇴근을 제때 못해 늦게 오는 부모들로 오랫동안 골치를 앓았다. 이들 때문에 보육 교사들은 날마다 초과 근무를 해야 했다. 두 명의 경제학자가 이 문제에 대해 연구를 진행했다.
보육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들에게 요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결과 부모들은 아이를 더 늦게 데리러 왔다. 왜 그랬을까?
보육원은 지각비를 물림으로써 부모들이 아이를 제시간에 데리러 와야 하는 가장 큰 이유를 없애 버렸다. 바로 '의무감'이었다. 이제 5시에 보육원에 도착하지 않으면 교사들에게 불평을 끼친다는 생각이 없어진 것이다. 보육원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지각비를 물림으로써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것에 가격을 붙여 버렸다. 그리고 무엇인가에 가격이 붙고 그 가격을 지불할 수 있게 되면서 미안해 할 필요도 없어졌다.
동기 부여 체계를 도입할 때 우리는 보통 측정하기 쉽고 향상시키고자 하는 부분에 대한 척도가 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동기 부여책으로 걸린 상을 받기 위해 지름길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들은 지식이 아니라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방법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경영자들은 다음 사분기 보고서가 나온 후에도 기업이 번창할 수 있는 종류의 결정이 아니라 단기적으로 주가가 오를 수 있게 하는 결정을 한다.
경제적 동기 부여책은 그것이 효과가 없어서라기 보다, 효과를 발휘하더라도 때때로 상황의 본질을 바꿔 버려서 문제가 된다.
10장 돈을 요구하면 이기적인 사람이다?
P179
모든 사회는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구조를 어떤 식으로든 갖추고 잇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경제는 물론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다. "저녁 식사가 어떻게 식탁 위에 올라오는가?"는 경제학의 근본 질문이다. 애덤 스미스는 그 답이 자기 이익 추구라고 했지만, 저녁마다 식사를 식탁에 차리고, 그가 열이 날 때 옆에서 돌봐 준 것은 그의 어머니였다.
돌보는 사람이 없으면 아이들이 자라지도, 병자가 회복하지도, 애덤 스미스가 책을 쓰지도, 노인들이 살아가지도 못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이를 통해 협력, 동정, 존경, 자기절제, 배려하는 법 등을 배운다. 이런 요소들은 삶을 살아가는 데 근본적으로 필요한 기술이다.
경제학은 '사랑을 아끼고자' 했다. 이를 위해 사랑은 모든 것에서 배제되었다. 그리하여 배려, 공감, 돌봄 등의 덕목들은 경제적 분석에서 밀려났다. 어떤 행동은 돈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어떤 행동은 배려를 위해서만 존재했다. 그리고 이 두가지는 절대 만나선 안 되었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실은 똑같은 현상이 대칭처럼 반대편에서도 일어났다는 점이다. 사려 깊음, 공감, 돌봄 등에 관한 논의에서 돈과 부에 관한 이야기가 빠진 것이다. 어쩌면 이야말로 현재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남성에 비해 훨씬 열등한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해 줄지도 모른다.
P180
가정은 전통적으로 돌봄의 장소다. 가정은 차갑고 비인간적인 세상에서 돈을 버느라 힘든 하루를 보낸 남성이 돌아오는 곳이다. 그곳은 감정과 도덕, 관능이 지배하고, 손뜨개 레이스 커튼으로 장식된 부드러운 여성의 세계다.
이 세계에서 남성은 바람직한 행동을 해야만 경제적 보상을 받는 기계의 부속품이 아니어도 된다. 가정에서는 시장 원리에서 벗어나, 여자의 관대한 시선을 받으며 더 나은 사람이 될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여성의 의무는 돌봄과 공감으로 남성의 삶에 균형을 가져다 주고, 남성이 접하지 못하는 인간적인 경험을 느낄 수 있도록 연결 고리가 되어 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여성은 사회 전체적으로도 균형을 잡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어 있다.
그녀의 부드러움이 시장의 요구를 보완해 주는 한, 인간이라는 종은 무제한적 욕심과 경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다. 여성의 돌봄과 공감력은 남성이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것이 바로 그녀의 경제적 역할이다.
돌봄 산업의 임금이 낮아서 주로 여성들이 그 분야에 종사하는 것인지, 주로 여성들이 일하기 때문에 그 분야의 임금이 낮은 것인지에 대한 답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남녀 간 경제적 불평등의 가장 큰 이유가 여성이 남성보다 돌봄 산업에 더 많이 종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간호하고 돌보는 일이 경제적으로 저평가되어 있는 것은 사랑과 돈 사이를 나누는 이분법 때문이다.
나이팅게일은 하느님과 맘몸(물욕의 신)이 서로 적이 아니라고 말했다. 신의 일을 수행한다고 해서 간호사들이 보수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녀의 글에는 선행을 하는 것과 경제적으로 잘살기를 원하는 것 사이에 아무런 모순이 없다는 말이 반복된다.
11장 90페센트를 위한 세상은 없다.
P207
"신은 모든 이와 함께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가장 돈이 많고 가장 큰 군대를 가진 사람들을 선택한다." 프랑스의 극작가 장 아누이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