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 - 문화 유전자 전쟁 中
1968년 3월 18일. 대통령 선거 운동을 갓 시작한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캔자스대학에서 연단에 올랐다. 케네디의 오늘날 상황과도 꼭 들어맞으므로 길게 인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진보를 다시 정의하다
"우리는 그저 물질적 부를 쌓느라 개인의 탁월함과 공동체의 가치를 저버린 지 오래입니다. 미국의 GNP는 연간 8,000억 달러를 넘지만, 여기에는 여러가지가 포함됩니다. 대기 오염, 담배 광고, 고속도로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구급차, 현관문에 다는 특수 자물쇠와 이 자물쇠를 부수는 사람을 가두는 감옥. 미국삼나무 벌목, 도시의 문어발 확장으로 인한 경이로운 자연의 유실. 네이팜탄, 핵탄두, 도시의 폭동을 진압하기 위한 경찰 장갑차. 텍사스 저격수 휘트먼의 소총, 연쇄 살인마 스펙의 나이프,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팔려고 폭력을 조장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이것들은 모두 GNP에 합산됩니다. 하지만 다음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 시의 아름다움, 결혼의 힘 대중 토론이 빚어 내는 집단 지성, 공직자의 청렴. 재치와 용기, 지혜와 배움, 공감과 애국심. 이것들은 하나도 GNP에 합산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GNP에는 삶을 살아갈 만하게 만드는 것들을 제회한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이로부터, 우리가 미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유를 제외하고는 미국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작 10주 뒤, 캘리포니아 민주당 대선 예비 경선에서 승리한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은 암살자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르는 동안 케네디가 두려움 없이 내디딘 길을 걸은 정치 지도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는 시대를 훌적 앞섰지만 무엇보다 GNP와 GDP에 주목했다. 두 기준에서는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많은 것이 합산되고, 삻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이 제외된다.
GDP에는 무엇이 포함되나?
GDP를 증가시키는 것을 몇 가지만 살펴보자.
오염. 지하수가 오염되어 수돗물보다 1,000배나 비싼 값을 치르고 생수를 사 먹어야 할 지경에 이르면 GDP가 증가한다. BP 딥워터 호라이즌 사의 멕시코 만 원유 유출 사고로 인한 막대한 정화 비용과 법률 비용은 이 원유를 휘발유와 디젤 등으로 정유하여 판매했을 때보다 GDP 증가에 훨씬 크게 기여할 것이다.(20년 전에 일어난 엑손 발데즈 원유 유출사고도 비슷한 효과가 있었다.) 해변과 야생 동물에게서 원유 100달러어치를 제거하는 데 수만 달러가 들 수도 있다.
범죄. 도난 보험금이 지급되고 사람들이 도둑맞은 물건 대신 새 제품을 사면 GDP가 증가한다. 경보기와 방법창을 설치하고 경비원을 고용해도 GDP가 증가한다. 교도소를 신축·운영하는 등 범죄와 관련된 비용도 모두 GDP 증가에 기여한다. 하지만 진짜 살기 좋은 마을은 GDP가 높은 곳이 아니라 이런 방어적 지출이 필요 없는 곳이다. 따라서 범죄에 대비한 방어적 지출을 GDP에서 제외해야 한다. 아이오와주립대학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살인의 사회적 비용이 1,725만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건강 악화. 또 다른<방어적> 지출로 갖가지 의료 비용이 있디. 이를테면 2006년에 미국에서는 담배가 3,500억 달러어치 이상 팔렸는데 이는 GDP를 증가시켰다. 같은 해에 미국에서 폐암을 치료하는 데 든 100억 달러 이상도 GDP 증가에 기여했다. GDP는 흡연 관련 암 치료 비용을 제회하기는커녕 밀 재배와 똑같은 긍정적 편익으로 취급한다.
가족해체. 이혼은 가족에게는 불운일지 몰라도 GDP에는 행운이다. 이혼하는 데는 적어도 7,000달러에서 많게는 10만달러의 비용이 든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변호사 비용, 각자 주거를 마련하는 비용, (종종) 정신과 치료 비용 등이 포함된다.
부채, 압류, 파산. 국민과 정부가 빚을 너무 내거나 개인 부채와 국가 부채가 지속 불가능한 수준까지 상승하면 GDP가 증가한다. 심지어 파산과 압류도 GDP에 계상된다. 법률 비용, 이사 비용, 주택과 재산 구매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2010년에 파산에 드는 평균 비용은 700~4,000달러였으며 그해 150만 명이 파산을 신청한 것으로 추산된다.
금융 상품과 거품 붕괴. 파생 상품이나 신용 부도 스와프 같은 신종<금융 상품>은 전 세계 경기를 후퇴시킨 2008년 금융 위기의 근본 원인이었다. 이들 <상품>은 보험 회사와 투자 은행의 수입을 늘려 주기 때문에 GDP 증가에 매우 큰 효과가 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패키지를 구매하려는 사람이 일시에 사라진 2008년 사례에서 보듯 상품의 가치가 순식간에 추락할 우려가 있다. 모기지 묶음 상품과 파생 상품 판매로 인한 수익이 거품을 형성하면서 금융 서비스는 GDP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부문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거품은 재앙의 전조로 여겨지기는커녕 대단한 경제적 성과로 칭송된다. AIG의 신용 부도 스와프 판매 수익은 2006년에 수억 달러로 급증했는데 이 덕분에 GDP가 증가했다. 2009년이 되자 AIG는 바로 그 신용 부도 스와프 때문에 61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조차 금융 상품을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자원고갈. 천연자원이 고갈되면 미래 세대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하지만 자원 고갈은 GDP에 곧잘 긍정적으로 반영된다. 이를테면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이 바닥나면 가스 가격이 상승하여 GDP가 증가한다. 소비자의 지갑은 훌쭉해지겠지만. GDP는 최종 시장 판매가의 상승이 자원 고갈 때문이진, 생산성 향상 때문인지, 시장 조작 때문인지 묻지 않는다.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이면 리터당 1,000원일 때보다 GDP 증가에 두 배 기여한다. GDP가 증가했으니 박수를 쳐야할까?
위험. GDP는 재난 비용이 발생할 위험을 감안하지 않는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전기를 판매하면 GDP가 증가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피해를 최소화하거나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비용도 GDP에 계상된다. 플루토늄 같은 치명적인 방사성 동위 원소는 반감기가 매우 길기 때문에 미국 환경보호국에서는 방사성 폐기물을 100만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제 GDP에 포함되지 않는 것들을 살펴보자.
자연. 천연자원은 생산성이 가장 높은 여러 경제적 자산의 토대다. 이를테면 시애틀 주민의 식수는 시더 강 상류에 자리 잡은 숲에서 정화된다. 이 물의 수질은 음용수 기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 덕에 정수장 건설 비용 2억 달러를 절약할 수 있었다. 이처럼 귀중한 천연 정수 서비스는 GDP에 계상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수장을 짓고 수돗물 요금을 올리면 GDP가 증가한다. 허리케인 피해를 입은 뉴올리언스에 제방을 쌓으면 GDP가 증가하지만, 자연 습지는 더 뛰어난 허리케인 대비책인데도 GDP와 무관하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어선을 사면 GDP가 증가한다. 하지만 그 물고기가 살아가고 번식하는 서식지는 GDP에 포함되지 않는다. 자연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명백한 경제적 재화와 용역은 GDP에 계상되지 않는다.
지속 가능성. GDP는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으며 GDP 증가에 기여하는 활동이 지속 가능한지 지속 불가능한지 구분하지 않는다. 대서양대구는 500년 넘도록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식용 어종이었지만, 수십 년 동안 남획한 탓에 씨가 말랐다. 지속 가능한 양만 잡는 것보다 한 해에 남획하는 것이 GDP에는 더 효과적이었다. GDP는 지속 불가능한 자멸적 어업과 이를테면 알래스카 연어잡이와 같은 지속 가능한 어업을 구분하지 못한다.
운동. 운동이 건강에 좋다는 건 상식이지만, 헬스장에 가든 뭘 하든 돈을 쓰기 않는 한 GDP를 증가시키지 않는다. 매일 산책하는 것은 건강에 좋은 일이지만, GDP의 관점에서는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관계. 인간관계는 우리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돈을 쓰지 않는 한 친구와 가족도 시 제품의 간 낭비다. 데이브와 존이 아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GDP에 계상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뭐라도 사주면 모를까. 그러면 GDP는 증가한다.
자원봉사. 자원봉사는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 주는 끈이며, 복지 예산이 줄어듦에 따라 중요성이 더 커질 것이다. 하지만 보수를 받지 않으므로 GDP와는 무관하다. GDP 관점에서는 이 또한 시간 낭비일 뿐이다.
집안살림. 적어도 GDP의 관점에서 집안 살림은 중요하지 않다. 육아 도우미를 쓰면 GDP가 증가한다. 가정부를 써도 GDP가 증가한다. 정원사나 목수를 고용하면 GDP에 기여할 수 있다. 집안일을 직접 하는 것은 나라의 중요한 평가 척도에 이바지할 책무를 게을리하는 짓이다.
가격 효과와 수량 효과. GDP는 가격 효과와 수량 효과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기업이 두 배 비싼 가격에 자동차 한 대를 팔았을때 GDP에 미치는 효과는 정상 가격으로 두 대를 판 것과 같다. 따라서 GDP는 원래 목적인 생산의 척도로서 심각한 결함이 있다.
품질. GDP에 대한 해묵은 비판 중 하나는 품질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GDP는 품질 개선을 반영하지 않기에, 품질이 낮고 값비싼 제품을 과대평가하고 품질과 성능이 뛰어난 제품을 과소평가한다. 성능이 뛰어나고 빠르고 값싼 컴퓨터보다는 성능이 낮고 느리고 값비싼 컴퓨터가 GDP 증가에 더 크게 기여한다. 그래서 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은 최근에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일부 제품의 품질 개선을 반영하도록 규정을 바꾸었다. 2011년에는 여기에 통신 기기를 더했다. 이를 위해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에서 계산한 품질 반영 가격 지수를 사용한다. 하지만 대다수 상품과 서비스의 경우 품질 개선은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이로운데도 오히려 GDP를 감소시킨다.
꽉 막힌 도로에서 휘발유를 허비하고 배기가스에 콜록거리다 결국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넝어야 했다고 가정해 보자. 교통 체중은 GDP에 기여한 셈이 된다. 교통사고가 나서 차가 박살 나고 보험료가 인상되고 거기다 사고 때문에 심각한 교통 제증이 일어난다면 GDP는 훨씬 증가할 것이다. 부상을 입어서 몇 주 동안 입원해야 한다면 GDP는 더더욱 증가할 것이다. 그날 아침에 값비싼 이혼 수속을 밟고 저녁에 집이 화재로 내려앉아 법률 비용이 발생하고 보험금을 받고 가재도구를 새로 샀다면 GDP 관점에서는 최고의 하루일 것이다.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