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정문촌 - 백석
한 용 석
2016. 2. 22. 08:05
주홍칠이 날은 정문이 하나 마을 어구에 있었다
'효자노적지지정문'―몬지가 겹겹이 앉은 목각의 액에
나는 열 살이 넘도록 갈지자 둘을 웃었다
아카시아꽃의 향기가 가득하니 꿀벌들이 많이 날어드는 아츰
구신은 없고 부헝이가 담벽을 띠쫗고 죽었다
기왓골에 배암이 푸르스름히 빛난 달밤이 있었다
아이들은 쪽재피같이 먼 길을 돌았다
정문집 가난이는 열다섯에
늙은 말꾼한테 시집을 갔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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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 : 춘신,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해 그 집 앞에 세우던 붉은 문
날은 : 색이 바랜, 백석 시에서 '날다'(색이 바래다)는 '낡다'와는 구분되어 쓰인다
몬지 : '먼지'의 고어. 방언(평안, 강원, 경기, 경북, 전남, 충청)
띠쫗고 : 치쪼고, 위를 향해 쪼고
쪽재피 : '족제비'의 방언(평안, 함경, 강원)
말꾼 : 말몰이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