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의 공포 - 손지우, 이종헌
석기시대는 돌이 없어졌기 때문에 끝난 것이 아니다.
돌을 대체할 기술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석유시대도 석유가 고갈되기 전에 끌날 것이다.
-세이크 야마니
P26
유가는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큰손’이 움직이다.
‘보이지 않는 손’의 논리가 석유 시장에서 통용되려면, 저유가 상황이 되면서 기업체의 수익성이 떨어지게 될 경우 일부 공급자들이 시장을 이탈하든지 혹은 공급을 줄이든지 해서 가격을 올려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100년이 넘는 석유의 역사에서 이런 식으로 유가가 결정된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당대의 헤게모니를 잠식했던 석유 메이저와 석유 카르텔에 의해 유가는 의도적으로 조장된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자신들의 재무적, 영업적 피해를 감내하면서까지도 저유가전쟁을 펼쳐왔을 정도다.
멀리 돌아볼 것도 없다. 2014년 하반기에 시작된 유가 급락의 상황에서 OPEC의 실질적 수장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나이미 석유장관은 “유가가 20달러로 떨어지더라도 시장점유율을 다른 나라에 내주지 않겠다”라며 감산 불가 입장을 천명했다.
일부에서는 이런 전유가 전쟁을 두고 ‘치킨게임’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다지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치킨 게임은 두 대의 차가 마주 보고 돌진하다가 먼저 피하는 쪽이 패배하는 게임이다. 석유의 가격 전쟁은 그렇지 않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결과물 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자금력과 헤게모니를 쥔 쪽이 결국에는 승리할 수밖에 없는 구도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냉혹하게 말하자면 시작부터 승패가 갈려 있는 싸움 이라고도 할 수 있다.
P35
유가 전쟁의 핵심은 7공주파와 신7공주파
‘석유왕’ 록펠러, 미국 석유 시장의 90퍼센트를 점유하다
미국이 애초부터 세계의 부를 좌지우지했던 것은 아니다. 19세기만 하더라도 여전히 유럽에 있었다.
미국이 극적인 부의 성장을 이룬 이유로는 많은 것들이 거론된다. 그 중에서도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재미있는 부분은 각각의 주요 산업에서 절대적인 힘을 가진 자본가들, 일명 ‘왕’이라 불리던 사람들이 속속 등장했다는 것인데, 우리가 잘 아는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 금융왕 JP모건, 철강왕 제이굴드, 자동차와 헨리 포드 등이 그들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부유하고 유명했을 뿐만 아니라, 그만큼 악명이 높았던 사람이 바로 석유왕 존 록펠러다.
석유의 성장은 단연 돋보였다. 증기기관차로 대변되는 1차 산업혁명 당시만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핵심적인 에너지 아이템은 석탄이었다. 19세기 초반 세계 에너지 소비에서 석탄이 차지하는 비중이 60퍼센트에 달할 정도였다.
2차 산업혁명이 미국을 중심으로 시작되면서 석탄보다 연료효율이 높은 에너지원이었던 석유의 우월함이 급격히 부각되자 판도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이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석유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 당시 사실상 ‘무’의 상태였던 석유 시장을 선점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로 큰 의미를 차지하는 것인지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P38
트러스트를 쉽게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한 기업이 작은 기업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해 의도적으로 저가 전략을 펼친다. 사실 가격전쟁뿐만 아니라 그 외 정치, 언론 등 갖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이용한다. 결국 상대 기업이 무너지게 되면 그 기업을 인수하여 덩치를 더 키운다. 그 다음 독점적 권력을 바탕으로 제품 가격을 끌어올려 폭리를 취한다. 이를 수없이 반복하여 독과점의 힘을 키운다.
이러한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추가적인 확보가 필요하다. 상대보다 덩치가 큰 것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핵심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뜻을 함께하는 동종 산업의 자본가들끼리 하나의 카르텔을 형성한 뒤 집단행동을 통해서 약탈적인 행태를 더욱 확장 해간다. 이것이 바로 트러스트다. 이때 카르텔의 주체자(석유에서는 록펠러)는 추가적인 투자 없이 더 큰 자본을 본인의 의도대로 휘두를 수 있다는 이점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즉 사실상 지배 지분은 없지만 회사를 본인이 원하는 대로 운영하면서 또 다른 이익 창출의 수단을 보유하는 셈이 된다.
P40
세계 석유 시장을 쥐락펴락한 7공주파의 등장
①스탠더드 오일 뉴저지 ②스탠더드오일 뉴욕 ③스탠더드오일 캘리포니아 ④텍사코 ⑤걸프오일 ⑥로열더치쉘 ⑦BP
수차례 이합집산을 거친 후 엑손모빌, 쉐브론, 로열더치쉘, BP라는 이름으로 현존하고 있다.
7공주파가 실제 석유 시장에 얼마나 막강한 권한을 지니고 있었는지는 그들의 가격결정권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세계 석유가격은 이들 7개 기업이 인위적으로 산정한 ‘공시가격’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지금처럼 WTI, 두바이, 브랜트라고 이름 붙여진 공개거래시장이 존재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석유 업체도 이들이 산정한 가격에 위배하여 판매할 수가 없던 상황이었다. 그들이 ‘그렇다면 그런 것인’ 절대권력의 구조였다.
대량의 석유를 매장하고 있던 중동 국가들도 군소리를 못했던 것은 다를 바 없었다. 석유를 개발할 자본이나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7개 기업들이 자국의 석유를 개발해주고 수익을 반반씩 나눠 갖는 구조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남의 나라 석유를 원하는 만큼 캐내서 이익의 절반을 취한 7공주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했던 구도였다. 지금 같았으면 산유국들이 기술개발 비용만 지급하고 아예 직접 개발을 진행했을 것이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이와 같은 수익 배분과 가격결정 구조에 반기를 들지 못했다. 7공주들이 국제 석유 시장에서 지닌 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이 워낙 막강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들에게 ‘7공주파’, 굳이 brother가 아닌 sisters라는 야릇한 별명을 붙인 이가 이탈리아 국영석유기업 ENI의 초대 수장인 엔리코 마테이다. 당시 마테이는 이란의 석유개발권을 취득하고 소련으로부터 공시가격 이하로 석유를 수입하는 등 7공주파에 반하는 행동을 단행했다. 이에 힘을 얻은 소련은 인도 에게도 낮은 가격을 석유 수출을 결정하게 되는데, 이는 록펠러 때부터 석유가격 결정에 줄곧 절대적인 힘을 과시하고 있었던 7공주파를 충격과 분노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7공주파들은 세계 석유 시장에 자신들의 힘을 다시 한 번 보여주기 위해 그들의 아버지 록펠러가 그랬던 것처럼 ‘저유가 전쟁’을 선택하게 된다. 세계 어떤 기업들보다 큰 자본 규모와 시장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는 그들이었기에 서로 굶는 싸움에 들어간다면 누구보다 강하게 버틸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중소 석유회사들은 억울하게도 심각한 이익감소, 혹은 도산의 위기에 처해졌다. 약 50년 전 록펠러가 미국에 자행했던 ‘약탈적 시장 잠식’이 재현된 것이다.
7공주파에 반기를 들었던 마테이는 1962년 10월 의문의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미국의 ‘경제 저격수’로 활동하며 제3세계 국가들을 속여 강탈하는 임무를 수행했던 존 퍼킨스는 그이 저서 『경제 저격수의 고백』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우리 경제 저격수들의 활동 방식은 다양하지만 가장 흔한 임무는 미국 기업들이 갈망하는 자원을 가진 나라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런 다음, 그 나라의 지도자를 유혹하고 뇌물을 주어 자국 국민들을 착취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서 결코 갚지 못할 차관을 도입하고, 국가 자산을 민영화한 뒤, 환경파괴를 합법화하고, 마지막으로 미국 기업에 귀중한 자원을 헐값에 팔아 넘기도록 자원이 풍부한 나라의 지도자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경제 저격수의 이런 시도에 저항할 경우 CIA를 등에 업고 활동하는 쟈칼이 해당국가의 체제를 전본시키거나 지도자를 암살한다.”
어디까지 이 이야기를 믿어야 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수많은 정치∙경제 인사가 20세기 즈음 의문의 사고를 통해서 세상을 떠났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결국 마테이의 죽음 이후 7공주파는 석유 시장에서 다시 한 번 절대적인 힘을 과시하게 되었다.
아이작 뉴터이 제시했던 운동의 법칙이 작동되었다는 재미있는 해석도 가능한데, 제1법칙인 관성의 법칙처럼 록펠러가 만들어낸 침략적 자본주의의 습성이 시작됐고, 제2법칙인 가속도이 법칙에 의해서 7공주파가 그 습성을 더욱 과도하게 다뤘다면, 그 시점에서 뉴턴의 말대로 제3법칙인 작용-반작용의 법칙이 어김없이 작동하게 된 것이다. 그 반작용, 즉 7공주의 행위에 제동을 건 주체는 바로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석유수출기구, OPEC이다.
P46
OPEC의 탄생, 그리고’석유황제’셰이크 야마니
OPEC의 탄생은 미미했거나, 혹은 소심한 수준에 불과했다. 1960년 OPEC을 창시한 사람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장관인 압둘라 타리키와 베네수엘라의 석유장관인 페레즈 알폰소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7공주파들의 자본과 기술 없이는 석유생산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록펠러 카르텔’에 대항하는 어떠한 공격적인 행동도 애초에 기대하기 힘들었다.
이러한 판도에 본격적으로 변화를 준 인물이 타리키에 뒤이어 사우디의 석유장관으로 취임한 셰이크 야마니였다. ‘석유황제’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록펠러가 ‘석유왕’이라고 불렸던 점을 감안하면 근대 석유 시장에서 야마니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1962년부터 사우디의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의 이사로 재직했던 그는 1968년 아랍에 근거를 둔 석유 카르텔인 OAPEC을 결성하면서 세계 석유 시장의 거두로서 등장하게 된다.
OAPEC이 탄생하게 된 계기는 1967년 중동 이슬람 국가들이 오랫동안 종교적 숙적이었던 이스라엘과의 전쟁(6일전쟁, 혹은 제3차 중동전쟁)에서 미국이 공공연하게 이스라엘의 편을 든 것에 대한 분노와 집단반발이었다. 야마니는 이스라엘을 돕는 미국에 대한 불만으로 아랍의 주요 산유국들인 쿠웨이트, 리비아, 사우디아라비아를 주축으로 OAPEC을 결성한 것이다.
이때 그가 처음으로 세상에 등장시킨 용어가 바로 석유 금수조치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준 ‘아랍 오일 엠바고’이다. 이는 특정 국가에 대한 석유 수출 중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당연히 OAPEC의 타깃은 미국이었다. 미국에 실제로 적용시키는 않았다.
야마니가 본격적으로 발톱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73년 10월에 벌어진 ‘욤 키푸르’ 전쟁 직후부터 였다. 제4차 중동전쟁 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태는 이집트와 시리아로 대표된 아랍 연합군이 제3차 중동전쟁 때 이스라엘에게 빼앗겼던 지역을 되찾기 위해 벌인 전쟁인데, 미국이 또 이스라엘을 지원한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행동은 야마니가 석유를 무기로 미국에 대한 구체적 행동에 나설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로서 작용했다.
OPEC 회원국 전체가 석유생산을 일괄적으로 10퍼센트 감축하고, 이후 매달 5퍼센트씩 추가 감산을 하자는 공격적인 제안을 하였다.
그의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3년 10월 석유 공시가격을 3달러에서 5.12달러까지 급격히 끌어올렸는데, 이는 중동 산유국들이 처음으로 석유 가격을 자신들이 직접 움직인 케이스로서 미국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곧이어 미국을 포함한 주요 서방국가들에 말로만 하던 수출 중단 조치를 실제로 취하면서 전 세계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중동의 감산과 금수조치로 인해 발생된 것이 바로 ‘오일쇼크’다.
유가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세계경제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사태다. 1972년 2.5달러에 불과하던 유가가 1974년 11.6달러까지 급등했다. 불과 2년만에 5배 가까이 상승한 셈이니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역설적이게도 이 오일쇼크가 전 세계적으로 파급력을 더하게 된 데에는 유가급등으로 큰 위기에 처한 미국 7공주파의 역할이 컸다. 그들이 1940년대를 전후로 펼친 과격한 저유가전재응로 석유가격이 낮아졌으며, 궁극적으로는 이로 인해 세계 에너지 수유가 석탄에서 석유로 급격하게 이동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석유는 석탄보다 열효율이 높은, 즉 단위 부피당 발열량이 더 많은 에너지원이다. 그런데 7공주파의 저유가 정책으로 석유의 가격까지 낮아지기 시작했으니 당시 사람들로서는 주 에너지원을 석탄에서 석유로 옮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졌던 만큼 세상에 안겨준 금수조치의 충격도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야마니는 절묘한 시점에서 ‘신의 한 수’라 할 수 있는 수출 제한 조치를 통해 반세기 넘게 석유 시장을 지배해오던 록펠러의 후예들을 상대로 전세계를 순식간에 역전시켰다.
그 막강했던 7공주파들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중동 국가들이 원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석유가격의 인상이었다.
그런데 중동의 힘이 하늘을 찌르고 있던 그 순간, 야마니의 태도가 돌변했다. ‘세계경제 안정을 위해’라는 뜬금없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유가를 낮추는 노력을 시작했다. 석유가 어마어마한 정치적 무기로 사용될 수 있음을 세상에 가장 먼저 인지시켰고 또 실현시켰던 야마니가 결정적인 순간에 갑자기 태도를 180도 바꾼 것은 당시에도 뜨거운 이슈였다.
그의 뒤를 정치적으로 강력하게 받쳐준 사우디의 국왕 파이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는 했다. 최대 산유국이자 이슬람 수니파의 수장인 사우디가 이런 입장을 취하자 다들 불만을 표시했고, 특히 강경파이자 사우디의 숙적인 시아파의 좌장 이란과 카다피 군사정권의 리비아는 야마니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1978년 이슬람혁명 발발로 이란이 석유 수출을 중단하면서 발생한 것이 2차 오일쇼크다. 1977년 13.9달러까지 높아졌던 유가는 1980년 36.8달러까지 또 한 급등하게 된다. 이는 2014년 기준의 물가로 환산해보았을 때 105.8달러에 해당하는 수치다.
비행기 테러까지 당했지만 야마니는 감산불가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재정위기에 처한 이란은 더욱 강경하게 가격인상을 OPEC에 부르짖었지만 야마니는 계속해서 반대 입장을 취했다.
P55
OPEC이 감산을 하지 않는 이유
1968년을 전후로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던 달러를 급격하게 풀어 금으로 바꿔달라는 요구를 해왔던 것이다.
금태환은 금 보유량만큼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제도였는데, 서유럽의 공세에 금을 빼앗기게 되자 달러 발권력도 현저히 저하되었다. 한편 금의 매입은 달러의 투매와도 연관될 수 밖에 없었다. 그만큼 시장에 달러의 공급이 늘어났고 가치도 떨어졌다. 이 때문에 달러의 위상에 타격을 입게 되었고 무역적자의 폭도 커지면서 미국은 경제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이에 대응해 닉슨 대통령이 1971년 8월 금 본위제를 폐지하며 철저하게 화폐 중심의 기축통화국으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시점에서 한 가지 의미 있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이 달러의 금태환을 중지하자 일부 OPEC 산유국들 가운데 달러 결제를 거부하려는 움직임을 일었다. 이때 닉슨 대통령은 국무장관인 헨리 키신저를 사우디로 파견해 극적인 합의를 도출해냈는데, 1976년 타결된 합의의 핵심내용은 사우디의 모든 석유 거래를 미국 달러로 결제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미국이 달러의 위상을 회복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급격하게 달러 보유를 줄이고 있던 유럽은 석유를 사들이기 위해 다시 달러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당시 유가까지 급등하고 있었으니 더욱 많은 달러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야마니는 미국에게 극적인 반전의 기회를 제공했다. 추가적으로 미국에게 안정적으로 석유를 공급함과 동시에 석유 판매를 통해 취득한 달러는 미국 국채에 재투자한다는 조건까지 합의해주었다. 사우디가 미국의 채권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 중 하나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야마니는 왜 갑자기 미국에 저자세를 취했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미국이 이스라엘로부터 그리고 아랍의 다른 국가들로부터 사우디 왕정을 군사적으로 보호하고, 또한 사우디의 유전을 보호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사우디는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국의 철저한 보호를 받는 성과를 끌어낸 것이다.
그가 얻어낸 것은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사실 야마니가 1963년 아람코에 재직하던 순간부터 가장 절실하게 원한 것은 석유회사인 아람코를 사우디의 국영회사로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그의 바람대로 아람코는 서서히 사우디의 손아귀로 들어오게 된다. 아람코는 1948년까지만 하더라도 지분이 스탠더드오일 뉴저지 30퍼센트, 스탠더드오일 캘리포니아 30퍼센트, 텍사코 30퍼센트, 스탠더드오일 뉴욕 10퍼센트로 나누어져 있던, 100퍼센트 미국회사였다.(스탣더드오일 뉴저지와 스탠더드오일 뉴욕이 현재의 엑손모빌이고, 스탠더드오일 캘리포니아와 텍사코가 현재의 쉐브론이다.) 1973년 사우디가 아람코의 지분 25퍼센트를 미국으로부터 양도받은 이후 1974년 60퍼센트까지 늘리고, 마침내 1980년에는 100퍼센트의 지분을 확보하면서 아람코를 완전한 국영회사로 변모시켰다. 공교롭게도 아람코의 국유화가 시작된 시점이 미국과의 ‘오일달러’논의가 시작된 1973년이라는 것은 재미있는 사실이 아닐 수 없다.
P071
뉴밀레니엄의 첫 충돌 : 7공주파 vs 신7공주파
신7공주파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처음 언급된 곳은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다 2007년 3월12일 “신7공주파, 서방 라이벌을 압도하다”라는 기사를 통해서 신7공주파는 OECD회원국 이외의 국가들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에너지 회사들이며, 업계 유수의 대표들과 협의를 통해 선정했다면서 대상을 공개했다.
①사우디 아람코(사우디 최대 국영석유회사)
②가즈프롬(러시아 국영에너지회사)
③CNPC(중국 국영석유회사)
④NIOC(이란 국영석유회사)
⑤PDVSA(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
⑥페트로브라스(브라질 국영석유회사)
⑦페트로나스(말레이시아 국영석유회사)
신7공주파가 급성장을 하게 된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자.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이 단어는 2000년대의 10년 세계경제를 설명하는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들이 성장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심적 역할을 했던 곳이 바로 해당국가의 국영석유 기업들이었다.
2000년 이후로 유가가 1970년대 후반 오일쇼크에 버금갈 정도로 급등했기 때문이다. 2000년 평균 30달러 머물러 있던 유가는 2008년에는 100달러 이상까지 폭등했다.
이전 7공주파 시대와는 달리 자신이 보유한 자원에 대한 개발권을 직접 보유하고 있었던 개발도상국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추가 매장량 확보에 열을 올려 더 많은 석유를 발견하고 뽑아 올리는 데 성공하였다. 대표적인 경우로 베네수엘라가 오리노코 벨트를, 브라질이 투피와 리브라라는 2개의 심해유전을 발견한 것이다. 이를 통해서 베네수엘라와 브라질이 각각 보유한 석유 매장량은 1999년 전 세계 대비 비중 6.0퍼센트까지 급증했다. 결국 신7공주파는 유가상승과 물량 증대의 수혜를 동시에 볼 수 있었던 것이다.
P75
저유가시대는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30년 만에 돌아온 투자과잉, 그리고 유가급락
2000년대 이후의 석유 시장, 특히 2014년 하반기 이후 유가급락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 전략 경영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가 주창한 공급과잉에 의한 사이클 파생 이론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수요는 일반적으로 순환의 형태를 띤다. 순환적 수요의 침체기에는 반드시 시설 과잉을 초래하며, 상승기에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기대를 가지게 하기도 한다”
장기적으로 수요의 성장률은 일정하다. 실제로 20세기 이후 글로벌 GDP 성장률은 3~4퍼센트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않는다. 물론 이 수요의 성장률이 항상 일정한 것은 아니다. 어떤 때에는 이 일상적인 밴드를 넘어서서 5퍼센트 이상의 성장률을 보일 때도 있고, 2퍼센트 이하를 보일 때도 있다. 이는 수요의 일시적 상승 또는 하락일 뿐 순환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문제는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수요가 상승하고 있을 때는 그 성장이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기대로 과잉투자를 집행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수요는 순환적 성격 때문에 성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 순간에서는 이전에 진행된 과잉투자가 결국 공급과잉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즉 포터는 지속적인 인간의 ‘아둔한 선택’이 공급과잉과 부족이라는 사이클 생성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던 것이다.
이는 지난 수십 년간의 유가 사이클과도 놀라울 정도로 잘 들어 맞는다. 여전히 세계 석유 시장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7공주파의 투자를 분석해보면 이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어느 정도의 투자가 진행되고 있는지 분석하기 위해 쓴 지표는 ‘자본토자/매출액’ 비율이다. 자본투자를 매출액과 비교하는 이유는 해당기업이 기본적인 이익창출 규모에서 투자를 어느 정도 집행하는지 살펴보기 위한 것인데, 이 수치가 높으면 투자가 많이 진행된 것이고 낮으면 반대를 의미한다.
P80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정유, 화학, 기계, 건설 등 중화학공업 업체들이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진출하는 사례를 뉴스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투르크메니스탄의 갈키니쉬 가스전이다. 이 가스전이 2008년 발견되고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투르크메니스탄은 현재 전 세계 가스 보유 매장량 4위 국가로 뛰어올랐다. 2008~2014녀 기간 동안 전 세계 가스 매장량 증대분에서 차지한 비중은 59.8퍼센트에 달한다.
베네수엘라도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신7공주파의 업적이다.
오리노코 벨트는 1990년대 후반에 세계 최대의 석유가 이곳에 묻혀 있을 수 있다는 추정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 존재가 많이 알려졌다. 세계최대의 석유가 베네수엘라에 묻혀 있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는 정치적은 이유 때문에 2014년까지도 이 유전을 제대로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고 차베스가 중심에 서 있는데, 그는 2007년 좌파적인 성향, 혹은 극단적인 반미주의의 성향에서 ‘사회주의 계획’을 발동하게 된다. 이 정책의 핵심을 요약하자면 오리노코 벨트는 베네수엘라의 축복과도 같은 자산이기 때문에, 해외 석유기업들은 이곳을 탐내지 말고 모두 지분을 내놓고 나가라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는 차베스의 최악의 한 수가 됐다. 가뜩이나 유전을 개발할 자본과 기술이 부족했던 베네수엘라인데, 이들이 나가면서 외국인 직접투자가 급격히 줄어듦과 동시에 기술적 어려움까지 겹치며 오히려 기존의 산유량마저 줄어들게 된 것이다.
2013년 차베스의 뒤를 이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어느 정도 시장친화적인 성향을 보이면서 해외자금의 유입을 유도하고 있다. 오리노코 벨트이 본격 개발은 공급과잉을 가속화 시킬 것으로 보인다.
공급과잉 상황에서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OPEC이다. 사우디와 이라크를 중심으로 증산 일변도를 지속하고 있다. 2015년에 들어서도 생산량을 계속 늘리며 시장에 대한 압박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작금의 공급과잉 상태를 요약하자면, 첫째 2000년 이후 계속 이어진 유가의 상승기족 기존 7공주파든 신7공주파든 간에 투자와 공급을 증대시키도록 유도했고, 이로 인해서 투자와 공급과잉의 우려 정도는 30년 만에 최고 수준에 달했다는 점이다. 2014년 하반기 이후 발생한 유가급락 사태는 기본적으로 이런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강조한 것처럼 석유의 수요와 공급만으로는 유가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공급증대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유가가 어떻게 떨어진 것이라는 식의 예측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추가 수요가 있다면 언제든지 공급을 충당할 수 있는, 혹은 기존 물량들을 밀어내고 점유율 전쟁을 펼칠 수 있는 ‘잉여공급’ 물량의 존재감이 커졌다는 것은 유가하락에서 큰 의미가 있다. 가격을 형성할 수 있는 석유 메이저들이 저가 전쟁을 펼칠 수 있는 만큼의 여력과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저유가가 생각보다 장기간 진행될 것이라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둘째, 투자 과잉을 주도한 주체가 과거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보두 과도한 투자를 진행했지만, 기존 7공주파가 그래도 과거에 비교할 정도의 수준이었다면, 신7공주파는 역사상 전례 없는 투자 수준을 보였다.
게다가 이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부채를 끌어당겨 투자를 진행했다는 부분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는 앞으로의 석유 시장 판도를 읽어내는 데 대단히 중요한 요소가 된다. 왜냐하면 모두의 예상과 달리 유가의 방향성이 축 하락으로 잡혀버릴 경우 과도한 부채를 수반한 투자과잉은 크나큰 독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는 신7공주파에게 다가온 위기상황은 상당부분 기존 7공주파가 파놓은 덫에 걸려들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할 만한 징후가 여러 군데에서 보인다는 것이다. 즉 우연히 그렇게 됐다기보다 마치 의도된 시나리오라고 볼 만한 정황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P85
죽은 록펠러가 살아 있는 신7공주파를 공격하다
경제학에는 네덜란드병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이는 1950년대 말 네덜란드가 북해에서 대규모 천연가스 유전을 발견한 뒤 단기간에 큰 수익을 챙기며 호황을 누렸지만, 이후 지나치게 에너지 수익에 의존한 나머지 다른 산업의 경쟁력이 저하되어 극심한 경기침체를 맞이했던 상황을 빗대어 이르는 것이다. 즉 단기 고수익이 가능한 석유산업에 지나치게 국가의 경제를 의존하는 것은 중장기적인 발전 측면에서 볼 때 그다지 좋지 못한 구조로 지적이 되어왔다. 그런데 그 역사가 반복되었다. 바로 무서울 줄 모르는 성장세를 이어왔던 신7공주파가 결국은 이 함정에 빠진 것이다.
현재의 저유가 상황이 길어지게 되면 신7공주파가 재무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반대로 부채 구조가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7공주파는, 마치 예전에 록펠러가 그랬던 것처럼 안정적인 자본의 힘을 바탕으로 좀 더 이 싸움을 길게 끌어가면서 버틸 수 있는 여력을 보유하고 있다.
P91
그렇다면 지금부터 중요한 것은 ‘유가가 어디까지 떨어지느냐’가 아니다.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가 시장에서 축출되기 전까지 현재의 저유가가 계속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 1985~2000년 저유가 사이클에서는 모두가 망가진 이후 슈퍼메이저의 합병이 나오기까지 무려 15년의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즉 지금의 저유가전쟁이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P93
미국과 사우디에 속단하지 말라
2014년 하반기 유가급락 사태 이후 전 세계 언론은 현재 저유가전쟁의 핵심을 ‘미국 대 사우디’의 구도로 잡아가고 있다. 즉 셰일혁명을 바탕으로 미국이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부상하자, 이들을 시장에서 축출하기 위해 사우디가 의도적인 증산과 저유가전쟁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셰일혁명을 기반으로 한 타이트오일의 생산단가는 70달러 정도이기 때문에, 이 선 아래로 유가를 끌어내리면서 미국 생산 업체들을 도산으로 이끌 것이라는 그럴싸한 시나리오가 제시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미국과 사우디가 서로에게 등을 돌렸을까? 그렇게 해야만 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들은 여전히 돈독한 우방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이는 석유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사우디가 여전히 공고한 공조체제로 석유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WTI비상업적 순매수 포지션과 사우디 OSP가 비슷한 시점에서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도 그렇지만, 저유가 상황임에도 지속적인 증산기조를 택하면서 공포의 저가 전쟁을 주도하고 있다는 부분에서도 연결고리를 잡아낼 수 있다.
안정적 재무구조와 다량의 오일달러를 보유한 석유 메이저들은 이 상황을 감내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추고 있다. 미국과 사우디의 이런 행동들 때문에 고스란히 피해를 받는 쪽은 사우디 아람코를 제외한 신7공주파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애초에 고래 두 마리는 서로 싸울 생각이 없었고, 어떻게 새우등만 터뜨리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팀 뉴욕 양키스의 스타 포수 출신이자 명예의 전당에도 오른 요기 베라가 남긴 명언이다.
석유시장의 ‘큰손’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전까지 싸움은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저해하는 어떤 세력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이들이 완전히 시장에서 밀려날 때까지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P106
1970년대에 석유가 에너지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퍼센트에 근접한 이후 계속 떨어져 현재 약 30퍼센트 선에 머물고 있다. 그렇다고 석유 대신 석탄의 소비가 다시 늘어난 것은 아니다. 석탄은 세계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고, 이 때문에 한때 시장내 차지하는 비중이 20퍼센트 초반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 빈자리는 누가 메우고 있을까? 그 새로운 에너지는 바로 천연가스다. 재미있게도 석유의 비중이 상승한 것은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후반까지 약 100년 이어진 셈인데, 결과적으로 석유 역시 석탄과 마찬가지로 100년 주기이 에너지 수명, 즉 ‘에너지 100년 주기’의 운명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가스가 석유를 대체하여 새로운 100년 에너지 시대를 열어갈지, 아니면 석유가 다시 저력을 발휘할지는 속단할 수 없다. 그러나 질문은 던져볼 수 있다. 석유의 시대는 왜 저물기 시작한 것 인가? 가스의 시대는 왜 빨리 열리게 된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으로 가장 먼저 나오게 되는 단어가 바로 미국의 셰일가스다.
P191
셰일가스-전기차-탈석유시대의 도래
지금까지<1차 산업혁명-증기관차-석타>에 이어 <2차 산업혁명-내연기관차-석유>, 그리고 이어서 탄생 가능한 <3차 산업혁명-전기차-가스>의 연결고리에 대해 살펴봤다.
‘전기차의 등장과 가스의 시대는 무슨 연결고리지?’
전기차 등장의 가속화는 탈석유시대라는 연결고리와 이어서 볼 경우 조금 더 이해가 빠를 수 있다. 세계 석유 소비에서 수송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기준 무려 56퍼센트에 이른다. 그만큼 석유 소비에서 수송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얼핏 생각하기에도 세계적으로 탈석유시대가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자동차에 들어가는 석유는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을지 질문한다면 언뜻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스마트카 개념의 전기차가 세상에 많이 도입될수록 수송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감소하게 된다는 점이다.
P194
물론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전기차든 가스든 이는 단순히 개인 소비의 행태만 바뀐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라, 국가의 인프라 자체가 많이 바뀌어야 소비의 본격화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단기간 내에 탈석유시대가 발생하면서 가스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아니다.
전기차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도 시간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다. 안전성에 대한 인식 전환과 도로와 충전망 등 인프라 교체는 그렇게 단시간 내에 이뤄질 요인들이 아니다. 그리고 철저히 소비자 관점에서 접근해본다고 하더라도 자동차의 평균 수명이 기본적으로 7년이상이라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휴대폰이야 기본적으로 2년에 한 번씩 바꾸기 때문에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의 교체가 빨랐을 지 모르지만 자동차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요인들을 감안할 때 애초에 1~2년 만에 어떤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큰 차원에서 변화가 태동 중인 에너지의 100년 사이클이 진행형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간의 문제만이 있을 뿐이지 방향성은 명확하게 나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석유는 지금에서야 막 정점을 치고 내려오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석유는 이미 1970년을 정점으로 글로벌 에너지 소비비중에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같은 기간 가스가 지속적으로 치고 올라오면서 현실적인 대안이 되어가고 있는데, 그런 현상이 발생한 지도 벌써 40년이 다 되었다. 어느 정도는 이미 뜸을 들여놓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십수 년 내에 마치 석유가 석탄을 대체했던 것과 같은 급격한 변화를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P200
우리나라는 정유, 화학, 조선, 기계, 철강, 건설 등 중화학공업의 비중이 매우 높다. 이들의 매출액은 유가에 연동되거나 비례하기 때문에 유가가 상승하면 이익을 낼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난다. 그런 상황이 2000년대였다. 2014년 하반기 유가가 급락하기 이전까지 고유가시대가 10년 이상 이어지고 있었는데, 그 당시 중화학공업 업체의 이익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사상 최대의 호황이었다는 표현도 자주 등장했다. 기업의 이익이 증대되니 고용과 투자가 활성화되어 임금과 소비가 늘어나 개인소득도 증대되었다.
수출 증대로 경상수지 역시 계속 증가하면서 나라의 주머니도 두둑해졌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지만 원유를 수입해 정제한 다음 다양한 석유제품을 생산해냈고, 이 같은 석유제품은 한동안 반도체, 전자제품, 선박을 제치고 우리나라 수출 품목 1등을 차지했다. 최근 유가하락으로 선두를 내주긴 했어도 석유화학제품까지 합치면 대한민국 수출의 독보적인 1위는 석유 관련 제품이다. 우리나라는 2014년 512억 달러어치의 석유제품과 483억 달러어치의 석유화학제품을 수출하였는데 이는 전체 수출의 17.4퍼센트에 달해 10.9퍼센트의 반도체와 8.5퍼센트의 자동차를 압도했다. 유가가 떨어지기 전인 2013년에는 18퍼센트, 2012년엔 18.6퍼센트에 달했다. 그래서 유가가 상승하면 수출액이 따라서 올라간다. 고유가는 수입 물가를 자극하고 경상수지를 악화시켜 경기악재로 작용한다는 면보다 중화학공업에 집중된 우리 경제에 호재로 작용하는 측면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P202
저유가 현상이 장기화되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증화학산업이 장기 침체를 겪을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투자와 비용을 줄여야 하고, 고용은 감축할 뿐만 아니라 구조조정으로 인한 대량해고 사태도 불가피해진다. 일부 기업은 부도를 면치 못할 수도 있다.
섬세하게 연결된 현재의 지구촌 경제에서 그 영향은 고스란히 우리나라에 수출 감소와 금융 충격 등의 형태로 전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전 세계적인 대규모 경기침체 사태는 1982년 멕시코 모라토리엄이 낳은 중남미 줄부도 사태, 1997년 IMF로 대변되는 아시아 금융위기, 2008년 미국 금융시스템의 붕괴 등 대략 10년에 한 번 꼴로 나타났던 일들이다.
P203
역사상 최대 수준의 고유가 시점에서 사람들은 가격에 부담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에너지를 많이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유가 덕택에 중화학산업과 개발도상국이 호황을 누리면서 수요를 확대할 수 있는 체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렇듯이 저유가가 축복이라는 근거는 어떤 측면에서도 증명하기 어려운 가설이다.
P231
새우등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는 두 마리의 고래, 미국과 사우디
석유 시장의 본성은 약탈적이며 현재 이를 주도하고 있는 ‘큰손’들은 7공주파와 아람코, 즉 미국과 사우디이다. 작금의 저유가 싸움을 주도하고 있는 것도 그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대체 왜 이런 싸움을 조장하는 것일까? 이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앞에서 언급되었던 경제 저격수, 존 퍼킨스라는 인물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자. 그가 주장한 저격수들의 행동은 매우 간단했다. 천연자원의 개발 여지가 충분한 곳에 → 갚을 수도 없을 만큼의 대규모 자금을 빌려주고 → 위기상황에 직면했을 때 자금상환을 요구한다 → 결국 갚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는 천연자원을 채권의 대가로 몰수하고 → 이후 취득한 자산을 민영화해 현금화시키고 이익을 챙긴다. 중남미의 많은 국가들이 실제로 이러한 덫에 걸려서 장기간 고생을 해왔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떨어질 만큼 떨어진 신뢰도와 줄지어 일어나는 중남미의 국가부도 사태에서 원활하게 해외자금을 끌어올 수가 없었다. 경기침체의 상황은 길어지고 정부로서도 더 이상 쓸 카드가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좀처럼 위기는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1989년 미국의 재무장관인 니콜라스 브래디였다.
지금까지도 브래디는 중남미 줄부도의 악순환을 끊어낸 대표적 인물로 화자되고 있는데, 그가 쓴 정책은 매우 간단했다. 중남미 국가들에 대해서 만연하게 퍼진 불안감 때문에 해외자금 조달이 안 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던 만큼,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이 대신 보증은 서주면서 해외채권 발행을 도운 것이다. 더욱이 상환부담이 덜한 장기채권이었다. 이를 통해 발행된 채권을 ‘브래디 채권’이라고 부르는데, 이로써 중남미에 다시 돈이 흘러 들어와 경기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미국이 이런 행동을 아무 이유없이 했을 리는 만무하다. 막대한 채무보증을 서면서 명시한 것은 시카고학파의 경제논리였던 규제철폐, 개방, 그리고 민영화였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1992년에는 북미 3국인 미국, 캐나다, 멕시코 간의 FTA를 발동하게 된다.
이로 인해 2014년까지도 미국의 수출대상국가 1위는 캐나다고 2위는 멕시코다.
NAFTA 체결 후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던 미국의 하청공장들이 대거 멕시코로 이동했고 지금까지도 그들은 미국의 최대 납품 국가 중 하나이다.
KOTRA가 2010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며, 가공부품, 조립제품, 소비재제품, 이른바 하청물품들의 미국 수출 중 가장 낮은 비용을 제공하고 있는 국가로 2009년까지 지속적으로 1등을 한 나라는 멕시코였다. 그리고 무역협회의 자료에 의하면 2014년 미국의 수입금액에서 멕시코는 중국과 캐나다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로 표시됐다.
1990년대 미국은 사상 최대의 경기호황을 뜻하는 ‘골디락스’를 맞이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대부분 이 호황의 원인을 이른바 IT/인터넷 혁명에 의한 급격한 생산성 증대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많은 경제학자들에 의해서 IT 분야의 생산성 급증만큼이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또 다른 요인이 바로 이 저가 공산품의 지속적 유입이라고 분석되었다. 즉 저금리 상황이었음에도 저가 공산품에 의해서 낮은 물가를 유지한 것이 경제에 대단히 긍적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하나의 연결고리를 어렵지 않게 잡아낼 수 있다.
1976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경제협력체계를 구축한 이후 미국이 사우디에 준 대표적인 혜택은 정치∙안보적 리스크를 책임져 준다는 것이다. 졍제적으로 도움을 줬는데, 이란 중심의 시아파 계열 및 OPEC 내 강경파들이 미국의 제재로 인해 산유량이 감산된 틈을 타 사우디는 지속적인 증산기조를 장기적으로 이어가면서 지금까지 막대한 부를 조성해왔다.
사우디는 석유의 달러와 결제, 그리고 지속적인 증산에 따른 저유가 상황을 조성해 결론적으로는 멕시코 모라토리업과 소련의 붕과를 유도해냈다. 이 두 현상 모두 미국에게는 경제적∙정치적으로 엄청난 이득을 안겨주었다. 지난 40년 동안 이들은’누이 좋고 매부 좋은’관계가 되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멕시코와 마찬가지로 고유가의 덫에 걸려 오일의 공포를 목전에 두고 있는 국가가 브라질이다.
그들의 위기는 결국 미국의 셰일혁명과 사우디의 지속적인 증산에 의해서 조성되었다.
페트로브라스가 위기 탈출을 위해 ‘핵심자산 매각’이라는 마지막 방책을 꺼내 들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핵심자산이란 바로 심해유전이다.
‘채굴단가가 80달러에 이르는 유전을 누가 인수하려고 할까?’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유전 개발에서 채굴단가는 통상 토털토스트를 의미한다. 즉 석유를 생산하고 있을 때 들어가는 인건비, 전기세, 운송비뿐만 아니라, 유전 개발을 위해 초기에 투입하는 석유 리그, 해상 유전의 경우에는 이 석유들을 결집시키는 플랫폼, 그리고 이를 육상으로 운송시키는 파이프 등을 모두 포함하여 산출한 단가라는 것이다.
그런데 통상 유전 전체 개발비용에서는 이 초기투자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이 높다. 그리고 심해와 같은 곳일수록 더 깊은 곳에서 작업이 가능한 리그를 투입해야 하고, 더 긴 파이프를 건설해야 하기 때문에 초기투자비용이 더 많이 들어간다. 많게는 70~80퍼센트까지도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대로 말하자면 초기투자비용을 제외할 경우 이미 개발한 유전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이다.
현금 확보가 급한 페트로브라스가 심해유전의 매각에 들어간다면, 현재 크게 낮아진 유가에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유전을 저가에 매각하는 수 밖에 없다.
이 유전을 매입하려고 나선기업들이 바로 기존 7공주파의 일원인 쉘과 토탈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매입에 나설 수 있는 기업은 이들밖에 없다. 화려하게 떠올랐던 신7공주파들은 유가급락 사태 이후 수익성 악화와 그에 따른 재무 악화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당연히 이런시장에서는 구매하는 측의 힘이 강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로 가격을 낮추어 매입할 것인가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런 과정이 진행되면 7공주파는 다시 1980~1990년대와 같은 세계 석유 시장에서의 힘을 구축하게 된다. 점유율만 다시 얻을 수 있다면 이들에게 당장 저유가로 인해 수익이 악화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이전 1985~2000년의 15년간 장기 저유가 상황도 버텨낸 경험이 있는 이들이다. 그리고 록펠러 시대 때부터 저유가를 유도해 도산을 이끌어내는 것은 그들의 전매특허와 같은 방식이었다.
P239
그래도 석유생산은 늘어난다
국가가 부도로 갈수록 석유는 더 뽑아야 한다
이들은 대 다수가 석유를 비롯한 천연자원 수출이 수익의 핵심인 국가들이었던 만큼, 위기상황에서 오히려 산유량을 늘려 조금이라도 이득을 더 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네덜란드병에 걸린 국가들의 모순적이면서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오리노코 벨트의 개발 이후 세계 최대의 석유 매장량 보유국가가 된 베네수엘라도 빼놓을 수 없다. 우고 차베스의 악수였던 ‘소셜리스트 플랜’ 때문에 산유량은 2005년 일산 331만 배럴에서 2014년 269만 배럴까지 오히려 축소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새롭게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면서 유전개발에 박차를 가했기 때문에 2015년부터는 생산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19년 그들의 산유량 목표는 600만 배럴로 잡혀있다.
현재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최악이다. 외국인 투자가 줄어든 데다가 산유량이 줄어들면서 경제 규뫂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하여 2015년을 전후로 한 시점에서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S&P는 베네수엘라의 신용등급을 모두 CCC로 강등시킨 바 있다. CCC평가를 내린 것은 사실상 국가부도 상태에 빠진 것이라고 경고한 것과 다름없는 수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오리노코 벨트의 산유량 증대가 필수적이다. 이를 통한 수익 확보만이 경제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 인가. 2015년 7월 미국과의 핵 협상이 타결되면서 시장으로 돌아오게 되는 또 하나의 빅 플레이어 이란도 잊어서는 안된다.
2014년 기준 이란의 원유매장량은 1578만 배럴로 베네수엘라, 사우디, 캐나다에 이어 전 세계 4위에 해당할 정도다. 잔가네 이란 석유장관은 증산계획에 대해서도 ‘점유율 회복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사우디와 똑 같은 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국가가 바로 리비아다. 자국내 정정불안이 가장 큰 문제이긴 하지만 이란의 제재가 풀린 것과 비슷한 시점에서 그들 역시 석유 수출 재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증산을 통한 경기침체 탈출이라 것이다. 심각한 과잉 공급과잉을 부를 만한 요인이다. 작금의 공급 과잉 사태를 불러일으킨 주범으로 꼽히는 미국의 셰일오일(타이트오일)이 2014년 기준 약 일산400만 배럴이 생산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많은 물량들이 곧 석유 시장에 들이닥칠 예정이다. 석유의 공급과잉은 이미 불가피한 영역으로 접어들었다.
P255
오일의 공포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위기의 굴뚝산업, 기회의 소비/기술
소비∙기술 산업에는 기회가 될 가능성이 높고 굴뚝산업에는 위기가 될 것이다.
먼저 소비∙기술 업종은 B2C라고 부르는 분야다. 유통, 화장품, 음식료, 자동차, IT, 인터넷, 금융 등 실소비자들과 가까운 기업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매출액 자체가 유가와 거의 연관성이 없다. 유가가 150달러든 50달러든 동네 자장면 가격은 큰 변함이 없다. 그저 물가를 반영한 만큼의 등락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유가하락이 이득이 되는 경우가 많다. 운송비, 난방비용 등 일반 비용이 감소하여 잉여 현금이 증가하고 이 돈을 투자나 고용에 쓸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주력업종인 굴뚝 산업은 어떨까? 굴뚝이라고 표현되는 산업은 중화학공업, 중장비산업 혹은 B2B 업종이다. 석유 개발뿐만 아니라 정유, 화학, 철강, 조선, 기계, 건설 등이 이 산업에 속한다.
정유∙화학∙철강은 큰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정유는 산업 자체가 석유를 다루다 보니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고, 화학산업의 경우에는 원자재로 석유, 가스, 석탄이 쓰이는데 이 세가지는 움직임이 사실상 유사하기 때문에 결국 유가 연동이라 부를 수 있다. 철강 역시 가격이 상품에 연동되는데, 상품 시장의 대표지수가 유가가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또한 같은 방향성을 보인다.
흔히 말해 수주산업이라고도 하는데, 통상 유가가 상승하면 굴뚝산업들이 이익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서 대규모 발주를 할 때 동반하여 수주물량이 늘어나면서 이익을 얻지만, 반대로 유가가 하락할 경우에는 수주 자체가 줄어들면서 탑라인이 떨어지는 양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한국은 의외로 B2B보다 B2C 업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산업구조를 지니고 있다. 2010년을 전후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떠오른 것이 삼성전자와 현대차, 즉 IT와 자동차라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리고 2014년을 전후로 많이 부각되는 산업이 중국의 ‘소비’와 연관한 화장품과 호텔, 패션, 유통 등의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즉 저유가라는 상황이 우리에게 절대적인 위기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저유가는 분명히 세계적으로 공포스러운 경제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신7공주파에 속해 있는 대형 경제규모의 개발도상국들이 위험에 빠진다면 한국 역시 안심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네덜란드병에 걸린 국가도, 2차 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경제구조를 갖춘 국가도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위기를 전후로 한 시점에서 새로운 소비와 기술 흐름을 주도할 수 있다면 기회를 맞이할 수도 있다.
P262
굴뚝은 어떻게 위기에서 벗어나야 할까?
P265
기존의 선진 업체인 미국과 유럽의 선택은 어땠을까? 필연적인 방향성이었다. 그들이 일본보다 나을 수 있는 것은 수십년간 기술력과 경험이었다. 이를 토대로 조금은 더 비싸도 더 나은 제품을 공급할 수 있음을 내세우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북미와 유럽 다수의 화학기업들이 스페셜티로서 전진하기 시작했다.
P266
근대 국가의 발전을 보면 대다수 유사한 단계를 거친다. 첫 단계는 ‘정치’적인 부분이다. 초기 단계에는 자본주의/공산주의, 혹은 최근에는 포퓰리즘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인 내홍을 한 번쯤은 거치는 모습을 보인다. 두 번째 단계는 ‘수출’산업의 성장이다. 대다수 개발도상국들은 낮은 지대와 임금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초반에는 단순노동에서 조립 후 수출 형태로서 수익을 창출해내는데, 이후로 가게 될 경우에는 조금 더 기술과 자본을 필요로 하는 중장비산업으로 진출해 수익을 창출해낸다. 다만 변함없는 사실은 수출 중심의 산업구조를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 째 단계에서는 수출 산업을 통해 국가경제가 성장하고, 이를 통해 임금과 지대가 상승하는 만큼 추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술’산업의 성장이 필연적으로 따르게 된다. 화학산업 역시 이와 똑 같은 역사를 20세기를 전후로 한 시점에서부터 100년 유지해 왔던 것이다.
고부가, 즉 스페셜티 산업으로 가야하는 당위성은 수치적으로도 입증이 된다. 순수하게 화학만 하는 순수 케미칼, 기술적인 부분이 가미된 스페셜티 케미칼, 아예 업종을 바꾼 하이브리드 케미칼 이렇게 세 가지의 화학산업으로 분류해서 2004년부터 2014년까지 그들의 이익을 분석해보면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온다. 조사한 항목은 세가지다. 평균 업업이익률, 이익률의 변동성, 이익률과 유가와의 상관관계이다. 이를 통해서 얻은 결론은 ‘순수 화학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평균이익률이 낮고, 변동성은 높으며, 유가와의 상관관계도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P270
아시아 LNG 사업이 안전할 수 있을까?
미국의 셰일가스가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고, 엄청난 수요자가 될 것이라 생각했던 중국 또한 중앙아시아로부터 PNG 혹은 셰일가스를 통해 가스 수급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모두 결국은 LNG를 피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사실 LNG사업은 태생적으로 큰 문제가 하나 있다. ‘배보다 배꼽이 큰’ 산업이기 때문이다. 가스가 석유보다 가격이 저렴함에도 불구하고, 가스를 해외로 내보낼 때 액화시킨 다음 특수한 배에 실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운송 과정에서 비용이 더 많이 드는 모순적인 현상이 일어난다.
비용은 지역과 운송 상황에 따라 모두 다르다. 아시아 지영으로 본다면, 통상 가격은 4달러/mmbtu(원유 기준 배럴당 30달러 이하임)에서 체결되는데 액화비용이 약 3달러/mmbtu, 운송비용이 2달러/mmbtu 정도이다. 장기 저유가 상황으로 갈수록 일단 LNG의 효용성은 떨어질 수 밖에서 없다.
LNG 수입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일본은 미국의 셰일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준비를 하고 있다. 일본은 세계 LNG 수입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이들의 변화는 어떤 형태로든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의미 있는 움직임은 파나마 운하의 확장공사에 주력하고 있는 동시에, 자국 내 발전 인프라는 전면 교체하려는 공격적인 계획들이다.
파나마 운하가 핵심이 되는 이유는 미국의 셰일가스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2013년 5월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 중에 유일하게 일본한테만큼은 가스 수출을 허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바 있다. 일본 중부전력과 오사카가스에 연간 22.5bcm를 차후 20년간 공급한다는 내용이었다. 2014년 기준 일본의 LNG소비량은 연간 약 112.5bcm이다. 즉, 이 한번의 계약으로 일본은 자국 냎 주요 에너지원 소비에서 20퍼센트 가까이 되는 물량을 얻어오는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그런데 파나마 운하 확장공사가 마무리되지 않는다면 이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기존의 운송 루트를 그대로 사용한다면 막대한 운송비를 지불해야 하는 만큼 그다지 저가의 이점이 부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스는 배우 큰 배를 통해서 운송해야 하기 때문에 좁은 해협은 통과할 수 없다. 걸프 지역을 통과한 뒤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오는 긴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그럴 경우 운송 기간만 무려 40일이 걸린다. 운송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차라리 남아시아에서 수입해오는 기존 루트가 나을지도 모른다.
현재 파나마 운하 확장 공사의 외국인 투자금의 대다수는 일본이 담당하고 있다. 외국인 총 투자금액 23억 달러 중 40퍼센트에 가까운 약 9억 달러가 일본의 자금이다. 2014년에는 확장공사를 조기 마무리하기 위해 1억달러를 추가 투입하기도 했다. 총 투자금액의 20퍼센트에 육박하는 대단한 규모다.
일본의 미국 셰일가스 수입은 2017년부터 계획되어 있다. 이미 일본의 도쿄발전은 기존 화력발전소 3곳을 경질 가스용 발전소로 교체하여 셰일가스를 곧바로 투입할 있게 한다는 내용을 2014년 8월에 발표하기도 했다.
넘쳐나는 재고 때문에 셰일가스를 수출해야 하는 미국과 이를 반드시 수입해야만 하는 일본. 지금까지 일본에게 LNG를 수출하던 남아시아, 중동, 호주,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큰 낭패를 겪을 수 밖에 없다.
어디 일본뿐이겠는가. 중국의 거대 계획도 지나칠 수 없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그들의 가스시대를 꿈꾸는 만큼 남아시아, 중동의 LNG 수출국들에게 추가 수혜자가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중국은 이미 액확와 운송비용이 없다시피 한 PNG를 중앙아시아와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는 계획을 마친 상황이다. 그 물량도 170bcm에는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오히려 일본보다도 더 큰 규모의 교역량이다.
한국가스공사와 러시아의 가즈프롬은 2011년 9월 PNG 도입 로드맵을 체결했다. 도입규모는 연간 약 10bcm이다. 한국의 연가 가스 수입량인 4bcm의 20퍼센트가 넘는 큰 규모다. 물론 이는 기본적으로 북한이 연루된 만큼 정치적 문제가 크기 때문에 아직 큰 진전이 없는 상황이지만, 경제적으로만 본다면 일본처럼 에너지 수입가격을 크게 줄일 수 있어 한국으로서는 매력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다.
P275
남쪽 나라들의 LNG 루트가 점점 줄어들게 된다면, 이는 단순히 그들의 수익 부재로만 연결되고 상황이 마무리 되지는 않을 것이다. 동복아시아의 조선, 건설, 기계 업체들에게는 또 한 번의 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 수주 물량 자체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발주 취소 등이 발생된다면 부실수주 이슈가 다시 한 번 불거질 개연성이 높다. 저유가의 고통까지 생각해야 하니 설상가상의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P276
셰일가스가 단순히 ‘미국의 부활’이라는 측면의 변화만 이끌어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보다는 탈석유시대 혹은 새로운 가스시대, 석유 시장의 ‘큰손(7공주파)’들에 의한 저유가전쟁, 전기차 시장의 활성화, 개발도상국(신7공주파)들을 노린 ‘오일의 공포’라는 상황, 아시아 LNG 시장의 위기에 이르기까지 굵직굵직한 현상의 변화들을 연쇄적으로 일으켰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 이는 우리가 셰일가스를 ‘새로운 에너지 패러다임’이라고 부르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 모든 큰 흐름의 변화를 우리는 한 발 뒤처진 상황에서 바라보고 대응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더욱 걱정하고 고민해야 할 점은 이 같은 변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큰 물결 속에서 아직까지도 새로운 산업과 기술이 태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국제정세의 변화에 있어서 에너지의 흐름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를 통해서 경제, 산업적인 부분에까지 접목시키는 거시적인 시각이 반드시 필요하다.
세상은 지금까지 ‘진화’의 연속으로 이뤄져왔다. 그러나 진화는 아름다움만 남기는 것이 아니다. 그 와중에는 필연적으로 ‘도태’라는 현상을 수반한다. 대한민국이 다시 한 번 휘몰아치는 산업혁명의 큰 파도에서 도태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진화의 큰 흐름을 읽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여기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