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 - 백석

한 용 석 2015. 11. 11. 08:26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

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

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

김질 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

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

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

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

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