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1일 북한산연가 제230차 가야산 일요정기산행
가야산(伽倻山)
행정구역 : 성주군 수륜면 백운, 봉양, 적송리 / 가천면 신계, 용사, 법전,마수리, 합천군가야면 구원, 치안, 죽전, 황산, 야천리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
백두산의 정기를 받은 소백산맥이 추풍령을 거쳐 지리산으로 내려 뻗다가 동쪽으로 혈맥을 갈라 솟아오른 곳으로 행정구역상 성주군과 경남
합천군, 거창군에 걸쳐 있다.
가야산은 6가야군의 주산으로서 정견모주(正見母主)라는 산신(女神)이 상아덤(서장대)에 머물면서 천신 이질하와 감응하여 두아들을 낳았는
데, 뇌질주일은 대가야 시조 이진아시왕이 되고, 뇌질청예는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이 되었으며, 가야국 김수로왕은 인도의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과 결혼하여 10명의 왕자를 두었는데 큰아들 거둥은 왕위를 계승하고 김씨의 시조가 되고, 둘째 셋째 아들은 어머니의 성을 따서 허씨
의 시조가 되었다고 하며, 힘차고 높은 칠불봉 밑에서 3년가 수도한 후 도를 깨달아 생불(生佛)이 되었다 하며, 그 자리에는 칠불암이 있었다
는 절설이 전해지고 있다.
가야산은 물이 맑고 경관이 수려할 뿐 아니라, 예로부터 삼재(三災 : 火災, 水災, 風災)가 들지않는 영산으로 불려지고 칠불봉, 우두봉(상왕
봉), 상아덤(서장대), 만물상, 재골산(동성봉), 가야산성, 용기사지, 심원사지 등 명성지가 많다.
산행일자 : 2010년 2월 21일
산행코스 : 백운동입구 - 동성재 - 서성재 - 칠불봉 - 상왕봉 - 해인사
산행대장 : 북한산연가 수헌님
산행인원 : 북한산연가 회원 26명 참석
산행지도
산행기록
06:55 종로3가 출발
07:20 잠실4번출구
10:46 백운동 주차장
10:50 이동
10:54 이정표(가야산관광호텔, 가야산야생화식물원)
←백운동야영장 0.2km, 탐방로입구 0.1km, →백운동주차장 0.2km
10:55 탐방로입구
11:22 이정표 ←칠불봉 3.1km, 상왕봉 3.3km, →백운동주차장 1.3km
11:27 이정표 ←칠불봉 2.8km, 상왕봉 3.0km, →백운동주차장 1.6km
11:34 동성재
이정표 ←칠불봉 2.5km, 상왕봉 2.7km, →백운동주차장 1.9km
12:00 백운암지
이정표 ←칠불봉 1.8km, 상왕봉 2.0km, →백운동주차장 2.6km
12:20 서성재(점심식사)
13:00 이동 / 이정표 ←칠불봉 1.2km, 상왕봉 1.4km, →백운동주차장 3.2km
13:16 이정표 이정표 ←칠불봉 0.8km, 상왕봉 1.0km, →백운동주차장 3.6km
13:44 이정표 ←칠불봉 0.3km, 상왕봉 0.5km, →백운동주차장 4.1km
13:57 칠불봉(해발1433m)
14:05 이동 / 이정표 ←상왕봉 0.2km, →백운동주차장 4.4km
14:17 이정표(해발420m) ←해인사 3.9km, ↑상왕봉 0.1km, ↓칠불봉 0.1km, 백운동주차장 4.5km
14:23 상왕봉(해발1430m)
14:45 이동(해인사방향 3.9km)
14:51 이정표 (해발1380) ←상왕봉 0.2km, →해인사 3.8km
15:05 이정표 ↑가야산정상, ↗석조여래입상(보물264호) 약40m
15:06 석조여래입상
15:10 이동
15:37 이정표 ←상왕봉 2.1km, →해인사 1.9km
15:45 이정표 ←상왕봉 2.6km, →해인사 1.4km
15:48 이정표 ←상왕봉 2.8km, →해인사 1.2km
15:58 공원지킴터
16:10 사명대사 석장비 및 부도
16:15 이동
16:20 해인사경내관람
16:50 이동
16:54 성철대종사 사리탑
17:05 해인사입구. 우측아스팔트길로 진행(주차장방향)
17:15 뒷풀이(주차장 옆 전주식당)
18:05 이동
21:50 종로3가 도착
산행사진
백운암지(白雲庵地)
절터의 규모로 보아 암지(庵地)로 추정된다.
현 수륜면 백운리 속칭 중기마을 일대에는 해인사와 비슷한 통일신라시대(802년)에 무려 1000칸이나 되는 대규모의 금당사(金塘寺)가 건립
되었고, 고려 중엽부터 법수사(法修寺)로 고쳐 부르다가 임진왜란 이후 조선 중엽에 폐사 되었고, 이곳 옹기골 일대에는 금당사에 딸린 100여
개의 암자가 산재해 있었는데 백움암 역시 그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된다.
서성대
가야공룡
만물상
칠불봉
칠불봉
칠불봉에서 보이는 상왕봉
상왕봉에서 바라본 칠불봉
상왕봉
해인사 석조여래입상(보물264호)
목 부분이 잘렸고 발과 대좌도 없어져 원형을 잃었다. 현재의 크기는 210cm정도이다.
양팔을 몸에 붙이고 반듯이 선 자세로 얼굴은 둥글며 코와 입이 작게 표현되어있다. 머리는 소발(素髮)이며 육계(肉髻)는 낮다.
옷 주름은 상체는 V자형, 하체는 U자형이다. 얼굴, 신체의 양감 그리고 옷 주름에서 통일 신라시대 불상의 특징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균형을 잃은 경직된 자세, 평면적이고 소극적인 조각수법 등, 형식화 경향이 현저한 여래상이다. 제작시기는 통일
신라말의 고려시대 초기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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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경내 탐방
윤고암 대종사 부도
해인사 사명대사 부도 및 석장비(보물 1301호)
임진왜란 때 승장으로 나라를 지킨 사명대사의 일대기를 기록한 비석과 사리를 봉안한 부도이다. 해인사의 부속암자인 홍제암 경내에 있다.
홍제암은 사명대사가 1608년에 선조의 하사로 창건하여 말년까지 수도하다 입적한 곳이다. 부도는 사명대사가 입적한 1610년에 만들어져고,
비석은 1612년에 건립되었다가 1943년에 일본인이 깨트린 것을 1958년에 복원한 것이다.
부도는 고려의 승탑 형식을 계승하여 3단의 연화대좌와 종모양의 탑신, 둔중한 지붕돌을 갖추고 있다.
해인사 홍제암 / 보물 제1300호
해인사의 산내 암자로 창건연대와 역사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사명대사가 입적한 곳으로 유명하다. 홍제암이란 암자명은 광해군이 사명대사에게 내린 시호인 자통홍제 존자에서 연휴한 것이다. 인법당, 영자각 등이 있고 사명대사를 비롯한 16분의 고승 영정이 봉안 되어 있다. 새로 복원된 사명대사비는 1612년 허균이 쓴 것으로 사명대사에 관한 기록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정확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암자 뒷산에 사명대사의 부도라고 전하는 석종형 부도가 있다.
해인사
해인사는 법보종찰이요, 화엄십찰의 하나이다. 최치원의 가야산해인사선안주원벽기에 의하면 해인사는 순응, 이정 스님에 의하여 신라
애장왕 3년(802)에 창건되었는데, 그때 왕의 조대비 성목태후가 대시주였다고 한다. “해인”이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유래된 것으로
해인사는 화엄사상을 천명하고자 이루어진 도장이다. 해인사를 우리나라 삼보사창의 하나인 법보사찰이라 부르는 것은 해인사 대장경판전에
고려대장경판인 법보가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해인도
해인도는 의상대사(625~702)가 당나라 유학시절 화엄사상을 요약한 210자 7언 30구의 게송(偈頌 부처의 공덕이나 교리를 담은 노래 글귀)을
만(卍)자를 발전시킨 도안에 써넣은 것이다.
도안 중심에서 ‘법성원융무이상’으로 시작하여 ‘구래부동명위불’로 끝나기까지 210자의 게송을 미로와 같이 54번 꺾어 도는 동안 그 내용을
마음에 체득하면서 따라가면 깨달음에 도달한다. 여기는 처음 출발한 그 자리다. 이는 법성이 원융한 사바세계 이대로가 부처님의 세계임을
의미한다. 화엄일승법계도, 법계도서인, 화엄법계도, 법성도 등으로 불린다.
법성계의 내력
의상이 스승 지엄의 문하에서 화엄을 수학할 때, 꿈속에서 형상이 매우 기이한 神人이 나타나 의상에게 “네 자신이 깨달은 바를 저술하여
사람들에게 베풀어줌이 좋을 것이다”고 했다. 또 꿈에 선재가 머리가 명석해지는 약을 십여제를 주었다. 그리고 또 꿈에 청의 동자가 세 번째
로 비결을 주었다. 스승인 지엄이 이것을 듣고, “神人이 신령스러운 것을 줌이 나에게는 한 번이었는데 너에게는 세 번이구나. 널리 수행하여
그 깨우친 것을 곧 표현하도록 하라”고 했다.
명에 따라 그 터득한 바 오묘한 경지를 순서에 따라 부지런히 써서 대승장 10권을 엮어서, 스승에게 잘못을 지적해 주기를 청했다. 지엄은 뜻
은 아름다우나 문사가 오히려 번잡하다고 했다. 이에 물러나 번거롭지 않게 하고 어디에나 걸립이 없도록 하였다.
다시 의상이 고치어 뜻을 바로 세우고 그윽함을 숭상했다고 말할 수 있으니, 대개 스승이 지은 수현분대지의를 존중한 것이다.
지엄과 의상이 더불어 불전에 나아가 그것을 불사르면서 “부처님의 뜻에 계합한다면 원컨대 타지 말기를 바랍니다.”고 서원 했다. 그리하여
타고남은 나머지 210자를 얻었다. 이에 의상으로 하여금 그것을 줍게 해서 다시 간절한 서원을 발하면서 맹렬한 불길 속으로 다시 던졌다.
마침내 210자중 한 글자도 타지를 않았다. 지엄이 눈물을 흘리면서 감동하여 칭찬하였다. 마침내 의상이 글자를 연결하여 게(偈)가 되게
하려고 며칠 동안은 문을 걸고 명상과 참구로 노력한 결과 마침내 칠언절구(七言絶句)로 삼십구를 이루니 삼관(三觀)의 오묘한 뜻을 포함
하고 십현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법성원융무이상 : 법의성품 원융하여 두모습아님이여,
제법부동본래적 : 모든 법은 동요않고 본래 고요하네
무명무상절일체 : 이름도 모양도 모두다 끊어 졌으니
증지소지비여경 : 증지의 지혜로 아는바, 다른 경지 아니네
진성심심미묘법 : 진성은 참으로 깊고 미묘하여
불수자성수연성 : 자성을 지키지 않고 연을 따라 이루네
일중일체다중일 : 하나가운데 일체요 많은 것 가운데 하나이며
일즉일체다즉일 : 하나가 곧 일체요 많은 것이 곧 하나이네
일미진중함시방 : 한 티끌 속에 시방세계가 포함되고
일체진중역여시 : 모든 티끌 속에도 또한 이와 같네.
무량원겁즉일념 : 한량없는 먼 겁이 곧 한 생각이요
일념즉시무량겁 : 한 생각이 곧 한량없는 겁이라
구세십세호상즉 : 구세와 십세가 서로 붙어 있지만
잉불잡란격별성 : 오히려 뒤섞이지 않고 따로따로 간격을 이루네
초발심시변정각 : 처음 발심할때가 바로 깨달음을 이루며
생사열반상공화 : 삶과 죽음, 열반이 항시 함께 하네
이사명연무분별 : 이와 사가 명연하여 불별이 없으며
십불보현대인경 : 사방의 부처와 보현이 대인의 경지요
능인해인삼매중 : 이룬자가 해인삼매 가운데서
번출여의부사의 : 번출함이 뜻고 같으니 불가사의하도다
우보익생만허공 : 생명을 이롭게 하는 보배비가 허공에 가득하니
중생수기득이익 : 중생들은 그릇 따란 이익을 얻네
시고행자환본게 : 이런고로 수행자가 근원에 돌아가려면
파식망상필부득 : 망상 쉬기를 어려워하면 반드시 얻지를 못하네
무연선교착여의 : 조건 없는 선한 방편 마음대로 잡고
귀가수분득지량 : 고향집에 돌아가 분수 따라 생명의 양식을 얻네
이다라니무진보 : 다라니의 다함 없는 보배로서
장엄법계실보전 : 법계의 실다운 중심 축의 자리에 앉으니
구래부동명위불 : 예부터 움직임 없는, 그 이름 부처라 하네
대적광전 앞마당의 비로탑과 석등
해인사 대장경판전
원경 왕사비
고려시대의 고승 원경왕사(1405~1114)를 기리고자 인종 3년(1125)에 세운 비다.
가야면 야천리 반야사 터에 있던 것을 1961년 해인사 경내로 옮겨왔다. 거북받침돌, 비몸, 지붕돌을 갖추었고, 각 부분이 얇은 것이 특징이다. 비문에 의하면, 원경왕사는 대각국사를 따라 송나라에 갔다가 귀국하여 숙종 1년(1104)에 승통이 되었다.
예종 때 왕사가 된 후, 귀법사에 머물다 입적하였다.
성철스님 사리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