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2008년 4월 13일 북한산연가 삼성산 산행

한 용 석 2008. 4. 14. 00:25

산행일자 : 2008년 4월 13일(일)

 

산행지 : 관악산~삼성산

 

산행코스 : 서울대입구 관악문 시계탑 - 관악도서관방향 - 칼바위능선 - 장군봉 - 삼막사 - 478봉 - 전망능선 - 염불암입구 - 안양유원지

 

산행대장 :  북한산연가 라파에루님

 

산행인원 : 북한산연가회원 20명

 

산행지도

 

산행기록

관악산 서울대 입구 만남의 광장 (이곳에서 연가님들을 기다립니다.)

 

10 : 05 이동 (관악문 시계탑광장) - 식당건물 우측으로 관악문화회관·도서관 건물방향으로 이동합니다.

관악문화회관건물을 돌아 좌측 오름길로 진행합니다.

건영아파트1동방향으로 진행합니다.  

 

10 : 08 관악산맨발공원(회원인사, 산행안내)

 

10 : 11 이동(맨발공원에서 바로 앞에 보이는 오름길의 등로로 가지않고 우측길로 진행)

산길 주변에 진달래가 만발합니다.*^^* 

 

 

10 : 33 국기봉도착(관악산에는 국기봉이 많이 있습니다.)

 

서울대 캠퍼스와 뒤로 관악산의 모습이 보입니다.

 

삼성산의 모습 

 

10 : 45 이정표 ←제1야영장 1.8km 50분 , →돌산 150m 3분 , ↓호수공원 900m 15분 ,↑신림9동 700m 10분


11 : 14 이정표 ↓관악산입구 2.4km 35분 , ↑삼막사 2.0km 50분 , ←폭포정 , → 제2야영장

 

바윗길

 

 

11 : 31 칼바위구간

 

 

 

 

 

 

 

 

 

 

 

칼바위 능선을 오르며 뒤돌아 본 모습 (봄의 색깔이 참 아름답습니다.)

 

 

12 : 00 식사(제1쉼터부근 무덤가)

 

12 : 50 이동   이정표 ←국기봉 400m 6분 , ↑삼거리 700m 10분 ,  →삼막사 2.2km 33분 , ↓활터 1.5km 22분  

 

 

12 : 54 장군봉을 지납니다.


13 : 05 이정표 ←철쭉동산 1.4km 22분 , ↑삼막사 1.6km 24분 , ↓시흥 1.5km 23분

 

 

 

 

 

13 : 19 갈림길도착     ←서울대입구(이정표 훼손) , ↑직진(생명의 나무사랑이 씌여있는 방향으로 진행)  

 

13 : 25 이정표 →제1야영장 , ←삼막사

 

13 : 29 거북바위(거북바위라고는 하는데....)

 

거북바위 주변에 핀 개나리 

 

 

13 : 30 시멘트 포장길 진입 

 

13 : 34 마애부도

 바위에 부도를 조각한 것으로 부도한 스님이 열반 후 사리나 유골을 모시는 묘탑이다.

암벽에 조성된 부도는 바위벽을 얇게 갈아낸 후 상단에는 화문형을 하단에는 사리 감실을

만들어 부도를 조성하였으며 서영당의 부도임을 알 수 있다. 조성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후기의 부도로 추정된다.

- 몰지각한 사람들이 돌을던져서 우리의 문화유산이 많이 훼손되고 있습니다.

   관리도 부실하구요. 크게 훼손된 후에 상심하지 말고 있을때 잘 보전해야 할 것입니다.

 

13 : 35 삼막사 도착(휴식) 

 

삼막사는 약1300여년전 신라 문무왕17년(677)에 원효, 의상, 윤필 등 세 성인이 암자를 지어 정진한 것이 삼막사의 근본이며

삼성산이라는 이름도 이때 지어졌다고 한다. 그후 도선국사(827~898)가 불상을 모셔 관음사로 부르다 사찰이 융성해지며

도량의 짜임이 중국 소주의 삼막사를 닮아 삼막사로 불리다 언제부터인가 삼막으로 바뀌었다. 고려 충목왕4년(1348) 나옹대사와

인도승려 지공이 이곳으로 오니 선풍이 크게 일었고, 조선조 무학대사에 의하여 동쪽에 불암사, 서쪽에 진관사, 북쪽의 승가사와

함께 한양 남쪽의 비보사찰로 그 역할을 하였다. 이후 태종때 대중창이 있었으며, 임진왜란시 왜구가 침범하여 불을 질렀으나

법당건물이 타지않아 왜구가 참회하고 떠났다고 전해진다. 근대에는 종두법을 실시한 지석영의 형 지운영이 이곳에 백련암을

지어 은거하였다.

 

 

 

스님들께서 가꾸시는 텃밭인가봅니다. 벗꽃이 이쁘게 피었네요. 이 텃밭에서 올 한해 농사를 준비하실 스님들께서 저 벗꽃을

보며 한숨 돌릴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도 농민의 땀이 소홀히 되지 않도록 음식을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삼막사 신도 버스는 오전 09:10 , 09 :40 , 10:10 , 10:30 , 오후 14:00 , 16:00이며 법회일과 휴일, 공휴일은 수시운행한다고

합니다. 

 

삼막사 삼층석탑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이 탑은 하층기단과 상층기단에는 아무런 조각이 없다. 탑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구성되어 있다. 탑몸돌의 각면에는 모서리 기둥(우주;隅柱)이 새겨져 있으며 지붕돌의

아래에는 각 층마다 3층의 지붕받침이 있으며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다. 두꺼운 처마는 수평으로 처리되었고

전각의 반전도 뚜렷하지 않다. 상륜부는 1979년에 보수한 것이다.

 

 

법고, 범종, 목어, 운판

 법고는 홍고(弘鼓)라고도 하며 줄여서 북()이라고 한다. 잘 건조된 나무로 몸통을 구성하고 양면은 소가죽을 사용한다.

크기는 지름이 약 2m인것에부터 30cm내외의 소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일반적인 타악기의 일종이지만 불교의식에

사용되므로 법고라 한다. 불경에는 여러 종류의 북을 열거하고 있는데, 그 용도는 대중에게 어떠한 일이 있음을 알리거나

일종의 신호로 사용되었다. 의식에 사용되는 경우 범패의 장단에 맞추에 친다.

축생들을 제도하기 위해 친다고 하는데 짐승을 비롯한 땅에 사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다. 두개의 북채로 마음심()

자를 그리면서 두드린다. 그 소리가 장중하고 무거워 부처님의 소리(사자후)를 상징한다. , 북소리가 세간에 널리 울려퍼져

불법의 진리로 중생의 마음을 깨우친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범종은  사찰에서 대중들을 모이게 할 때나 아침, 저녁의 시각을 알리기 위하여 사용하는 종으로 아침과 저녁 각각

28, 33회를 치며 이는 천상과 지옥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입니다.(수행자가 입적했을 때 임종과 동시에 느린 속도로 108번을

치기도 하는데 이는 생을 마감하며 백팔번뇌를 타파하고 열반으로 들어가는 장중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목어는 목어고(木魚鼓), 어고, 어판이라고도 한다. 이 법구는 중국에서 유래하였으며, 물고기의 배부분을 비워 나무막대리고

물고기 배의 양벽을 두드려서 소리를 내게 하였다. 처음에는 식당이나 창고등에 걸어두고 대중을 모으는 데만 사용되었으나

뒤에 독경을 하거나 기타 의식에 사용하게 되었다. 물 속의 중생을 제도하는 뜻이 있으며, 물고기는 밤에도 눈을 뜨고 있으므로

수행자로 하여금 잠을 자지 않는 물고기처럼 항상 깨어 있어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뜻에서 목어를 두드려 게으른 수행자를

경책하는 뜻도 있습니다.

운판은 청동이나 철로 만든 얇은 판으로, 구름의 형태를 하고 있어 운판이라 합니다.

운판이 울리는 소리는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며 허공을 헤매며 떠도는 영혼을 천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삼막사 약수 - 삼성산의 약수는 철분성분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이 담겨있는 부분은 녹슨색으로 물들어 있고

물을 마실때 입안에서 약간 비릿한 철냄새가 납니다. (이물 많이마시면 철들까요??)

 

14 : 04 이동(삼막사 칠성각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스님들께서 수행하시는 곳인가봅니다.

 

제비꽃

 

아직 피지않은 목련 

 

 자목련

 

 

삼귀자

조선말기 종두법을 실시한 지석영의 형 지운영(1852~1935)이 이곳 백련암지에서 은거할 당시에 쓴 글로 바위면을 다듬어

음각으로 거북귀자를 새겨 놓았다. 글자의 크기는 왼쪽부터 높이74cm, 77cm, 86cm이며 좌측에 불기 2947년 경신중양

불제자 지운영 경서란 명문이 있어 1920년에 쓴 글임을 알수가 있다.

서체는 전서로 우측가자머리에 관음몽수장수 영자 라 하여 꿈에 관음보살을 본후에 글씨를 썼음을 알 수 있으며 삼귀자

우측에는 77cm x 70cm의 크기로 바위면에 시주자 명단을 새겨 놓았다.

 

아직 피지 못한 진달래 꽃봉우리의 색이 참 이쁩니다.

 

14 : 04 남녀근석 도착(칠성각 도착)  남근석

 

여근석

남여근석 (1983년 9월 19일 경기도민속자료 제3호 지정)
2개의 자연 암석으로 그 모양이 남녀의 성기 모양과 닮았다고 하여 남녀근석이라 부른다. 남근석은 높이 1.9m이고 여근석은

높이 1.1m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신라 문무와 17년(677) 원효가 삼막사를 건립하기 이전부터 이 남녀근석은 토속신앙의

대상으로 숭배되었다고 한다.

성기 숭배 풍속은 풍부한 수렵 및 채집의 기원 및 풍농, 풍어, 다산, 무병장수 등의 기원이 한데 얽힌 복합 신앙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신앙은 선사시대 이래 현재까지도 무속신앙, 풍수신안, 동제, 미륵신앙 등의 전통 속에 어우러져 있다.

 

칠성각

 

 

내부에는 마애삼존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칠성각 마애삼존불(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4호)

조선영조 39(1763)에 조성된 것으로 암벽을 얕게파서 만들었는데, 칠성각이 전실 역할을 하고 있는 석국사원

양식으로 전해오는 중요한 자료이다. 중앙의 본존물을 중심으로 좌우에 협시보살을 거느린 삼존불로 모두 연화좌

위에 앉아있다. 불상이 모셔져 있는 칠성각이 조선 영조 40(1764)에 세워졌으므로 본존불은 칠성각의 주존인

치성광여래로 볼 수 있다. 민머리에 지혜를 상징하는 상투 모양의 육계를 띄고 있다. 어깨에 닿은 긴 귀와 얼굴에

연이어 어깨가 표현되어 목은 달리 표현되지 않았다. 옷은 두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으로 가슴에는 내의인 군의의

매듭이 표현되어 있고 두 손은 배 앞에서 보륜을 쥐고 있다. 좌우의 보살상은 연꽃좌에 앉아 있으며 해와 달이 표현된

삼산관을 쓴 일광보산(부처의왼쪽)과 월광보살이다. 가슴에 두 손을 모아 합장하였으나 보관과 손 모양을 제외하면

본존과 같은 모습이다. 이 마애불은 전체적인 모습을 볼 때 얼굴과 당당한 어깨 등 상체 표현에 치중한 느낌을 주고 있다.

본존불의 보륜 수인과 좌우 보살상인 일광보살, 월광보살상의 특징은 칠성각에 본존으로 봉안된 형식과 더불어 칠성의

본존불인 치성광삼존불을 나타낸 것으로 추정된다. 불화로서 치성광후불탱은 꽤 남아 있으나 마애불상으로는 매우

희귀한 예이므로 가치를 지닌다.

 

 

바위에 새겨진 마애삼존불의 전실역할을 하는 칠성각은 자연의 형태를 거스르지 않고 건물이 자연에 맞춰 제작된 재미있는

형태입니다.

 

14 : 10 삼성산 능선위 너른바위지대 도착 - 오름길에서 갈래길이 나오는데 좌측의 평평한 길로 진행하지말고 경사길로

           진행 합니다.(평평한길로 진행하면 삼성산 정상 통신탑방향입니다.)

 

삼성산에서 보이는 삼막사

 

 

삼성산 정상 통신탑

 

 

 

 

14 : 20 재미있는 바윗길이 시작됩니다.

 

 

 

바윗길 능선에서 뒤로 보이는 삼막사

 

 

 

바로 아래쪽에 상월암이 자리하고 있습니다.(보이지는 않습니다.)

우측 아래쪽에 파란 부분이 상월암이 자리한 곳입니다.

 

 

아래로 보이는 곳이 염불암입니다.

 

바위가 인절미 같이 생겼습니다. 이곳 바위가 재밋습니다.

 

 

 

하강연습바위도 있습니다.

 

바위틈에 소나무들이 멋진 폼(도봉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ㅎㅎ)

 

15 : 15 안양예술공원 도착

 

J1 - SAMI RINTALA - 하늘다락방

 

 

J2 - 홍명섭 - 열반의 문 

 

 

TOBIAS REHBERGER - 계란은 삶의 의미를 찾는 나의 여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계란조형물 앞 도로(염불암방향)

15 : 27 염불암입구 이정표  ↑삼막사 1.5km , 염불암 0.8km , ↓안양예술공원

안양유원지 방향 내림길

 

 

 

 

하얀 벗꽃길이 참 이쁩니다. 

15 : 30 안양유원지(산행종료) / 뒷풀이장소로 이동

뒷풀이 참석은 하지않고 집으로 향합니다.

 

폭포광장 

 

안양유원지 공영주차장(마을버스 2번이 다닙니다.)

 

 

 

안양유원지 공영주차장 뒤쪽으로 바위에 새겨진 범종이 있습니다.

석수동 마애종(경기도 지방문화재 제92호)

이 마애종은 달아놓은 종을 스님이 치고있는 장면을 거대한 바위에 묘사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마애종이다.

사각형의 결구 형식에 쇠사슬로 연결된 종은 음통을 갖춘 비교적 정교한 종뉴아래에 약간 벌어진 형태의 종신이 연결되어

있다. 종신의 표면에는 상대와 붙어있는 유곽, 종복에 있는 연화문 당좌, 뚜렷하지 못한 문양을 새긴 하대가 매우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공간의 균형감이 있어 보이며, 전체적으로도 안정감이 있는 종을 표현하였다.

이 마애종은 조각수법이나 종뉴, 종신의 표현등에서 신라말 또는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마애종의 유일한 예로서

귀중한 자료이다.

 

마애종이 있는 곳을 지나 걷다보면 나무로 우거진 작은 길이 나옵니다. 이곳이 안양 보육원길입니다.

 

 

 

안양예술공원 버스정류장(구 안양유원지)

이곳에서 서울로 나가는 버스를 타고 석수역에서 내립니다. 석수역에서 출발하는 150번 버스가 저희동네까지 가는 버스라서

석수역에서 150번으로 갈아타고 버스안에서 한잠 자고 집까지 이동합니다.

삼성산이 바위가 아기자기하고 재밋는 산이라는 것을 오늘 라파에루님의 산행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산행내내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주고 며칠전의 일기예보 비소식도 날씨좋음으로 바뀌고 ㅎㅎ 안양예술공원에서 예술작품도 보고 이쁜 꽃들도

보고, 삼성산이 품고있는 봄색깔과 문화유산들을 눈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던 유익한 산행이었습니다.

좋은산행을 계획하고 안내해주신 북한산연가 라파에루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수고많이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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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9일 복기산행 후 유유산업 정문안쪽 부지안에 있는 당간지주와 삼층석탑을 보고왔습니다.

유유산업 앞쪽 초당두부집 두부요리가 맛있더군요. 김치가 맛있더군요. 다음에 이쪽으로 하산하게되면 그땐

포두부에 시원한 막걸리 한잔 해야겠습니다. ㅎㅎ

중초사지 당간지주(보물 제4호)

당간지주는 부처와 보살의 공덕과 위신을 기리는 불교 용구인 당(일종의 깃발)을 달기 위한 당간(깃대)을 고정해 주는

두 개의 지주대를 말한다. 주로 절의입구에 세워져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당간지주는 돌아나 철로 만든 것이지만

예전에는 목재를 많이 사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중초사지의 당간지주는 높이 3.73m이며 명문이 새겨져 있어서 만들어진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d일한 당간지주이다. 현재는 남아 있지 않지만 중초사지 당간지주 아래쪽에는 직사각형의 돌

받침이 있었는데, 그 중앙에 지름 34cm의 구멍을 파서 당간을 받쳤다. 동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지주 사이의 간격은 60cm이며

당간을 고정시키는 구멍(간구)이 위 아래에 나란히 2쌍 이다. 당간지주의 위쪽을 보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둥글게 깎았으며

위쪽 구멍 아래에 1단의 턱이 있다.

 

안양 중초사지 삼층석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4호)

높이 2.2m의 고려시대 일반형 석탑이다. 본래 이 탑은 중초사지 당간지주(보물 제4호, 827년)에서 동북쪽으로 약 80m되는

밭 가운데에서 도굴되어 훼손되었던 것인데, 그곳에 공장이 건설됨에 따라 1960년 현재의 자리에 옮겼다.(유유산업 부지 정문옆)

탑신부의 2,3층 탑몸돌과 상륜부는 찾지 못한채 복원되었으며, 기단 면석 가운데 한 면이 없어 새로 보강하였다. 현 상태는

단층 기단 위에 1층 탑몸돌이 놓이고 그 위에 1층,2층,3층의 지붕돌이 겹쳐 쌓여 있다. 3층 지붕돌의 윗면 중앙에는 찰주를

세웠던 구멍이 남아있다. 이 탑은 전체적으로 보아 탑신부에 비하여 기단부가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안정감과 균형감이 떨어진다.

석탑의 조형상 당간지주보다 후대인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